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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왜 착해질까? 봄이 되면, 꽃이 피면. 하얀 목련과 연붉은 벚꽃이 필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작고 조그만 손, 처음 안았을 때, 깃털처럼 가벼웠던 무게감. 점심을 먹으러 교직원 식당으로 향하던 길. 문득 하얗게 핀 목련과 벚꽃 나무들을 보면서, 연달아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남녀학생들은 삼삼오오 미소 지으며 걷고 있었고, 장난 끼 많아 보이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은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꽤 차분하게 변했다. 모두 다 착해 보이는 이 세상. 흡사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했던 득의만연 한 세계관이 무너지면서, ‘아, 아기는 이렇게 연약하고 예쁜 존재구나’했던. 숭엄했던 첫 만남. 원 기억. 깨진 오만함들. 봄에 핀 꽃과 새 순..
1년이 지나갑니다. 12월 30일이니까,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이네요. 십대 시절 언젠가, 작은 방구석에 드러누워 일기를 쓰던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도 지금과 같은 연말이었는데요,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일기를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카운트 다운을 외치며 일기장에 글자로 기록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했던 추억입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갑니다. 청주대학교로 자리를 옮긴지도 3년이 되어 가네요. 지난 2020년 3월부터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번 학기까지 꼬박 6학기를 채웠습니다. 처음 1년은 코로나로 인해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될 수 없었고, 그 다음해 부터는 절반은 오프라인으로 나머지 절반은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그러다 정상적인 대면 수업을 진행한 것은..
일찍이 세익스피어는 “거지가 죽을 때는 혜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왕자가 죽으면, 하늘은 알아서 불꽃을 뿜는다”고 덧붙였다. 세익스피어가 살던 중세는 왕자나 귀족 등 지배계급이 평민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를 지나 한 개인을 위대한 인물로 바라보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개인은, 늘 사회 속에 속해 있으면서, 평범한 인간생활의 범상함이, 언론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의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형식들에 의해 사회로 녹아든다. 그리고 사회에 스민 그 흔적들은, 공분의 공론장을 만들어 대중의 정념을 자극한다. 이 시대에 왕자는 죽고, 그 자리에 폭발해야할 불꽃은 희생양이 되어버린 개인에게 작렬한다. 따라서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오늘날의 큰 비극은, 개인보다..
청주가 교육의 도시? 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고들 한다. 왜 그럴까? 대학교가 많아서? 글쎄, 대학은 천안이나 용인도 적지 않다. 청주교대나 교원대가 있어서? 그럴 리가 없다. ‘동시대’와 ‘대학교’라는 작금의 도그마에 갇히면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는 세간의 평을 해석하기 어렵다. 청주는 왜 교육의 도시로 불릴까? 지난 3년간 청주에 거주하면서, '청주가 교육의 도시로 불리게 된 배경'을 알아본 바로는, 바로 아래와 같은 역사적 흐름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향교가 교육의 정신을 불어 넣는 곳이라면, 서원은 인재를 향성하기 위한 곳 먼저 향교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던 향교는, 예쁜 카페가 즐비한 수동 쪽에 위치해 있다. 수동을 걷다보면, 일차선 도로..
오늘 교내 게시판에 한 교수님의 부고 소식이 떴다. 본인상이다. 언제 퇴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을 떠나 명예교수로 계셨던 분이다. 청주에 거주하여, 정확히 말하면 교수가 되고나서, 교수 퇴임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퇴임한 교수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실까? 최근에 느꼈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소회를 전하고자 한다. 교수가 되고 나서, 학부 시절 은사님을 몇 분 만나 안부를 여쭈었던 적이 있었다. 디자인의 원리원칙에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A 교수님은 “퇴직한 다음엔 디자인? 그거 보지도 않아. 자네도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하고 조언하듯 말씀하셨다. 총기 가득하던 눈빛은 흥미 잃은 어린아이의 눈빛처럼 변해있었다. 서슬 퍼렇던 40대 중반의 교수님은, 당시 신입생이었던 내게 F학점을 주셨고..
2020년 7월 6일. 월요일. 교내 로비가 썰렁했다. 발열을 체크하던 조교 선생님들도, 줄을 서던 학생들도 자취를 감췄다. 방학이다. 지난 금요일까지 붐볐던, 물론 코로나 이전과 같지는 않았겠지만, 예대 신관 1층은 언제 그랬냐느 듯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가동을 멈췄던 엘리베이터도 움직였다. 4층 연구실 복도도 한산했다. 아니, 인기척이라곤 이 건물을 통틀어 나 혼자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조용했다. 오늘 새벽 00시를 기점으로, 그동안 쓰던 011 핸드폰이 모든 서비스를 멈췄다. 이른 오전,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 주 011서비스 안내 종료 고지서가 이전 집으로 간 것 같습니다. 지금 주소로 다시 보내줄 수 있나요?” 전화 상담원은 예의 상냥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
2020년 7월 4일 토요일. 어제, 종강했다. 맡고 있던 과목 3개 강좌가 끝났다. 다음 주면 성적 입력하고 학생들 강의평가에 대한 답, 이곳에서는 CQI라고 부르는데, 그걸 온라인으로 입력하면 끝이 난다. 한 학기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첫 달은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정신 없었다. 교육부 지침은 매주 다르게 전파되고, 대학들은 개강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비대면 수업을 위한 네트워크와 서버는 증설에 증설을 했고, 신입생들은(물론 나 같은 신임교원도) 초유의 비대면 개강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물론 그들의 선배들이라고 경험해 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첫 달의 전쟁이 지나가고 둘째 달이 되었을 때, 시간이 무척 느리게 흘렀다. 이 말은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이 처음으로 재배치 되는 상황이..
2020년 5월 12일 금요일. 이른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오전 8시. 자리에 앉자마자 메시지가 요란하다. 우리 과제가 교육부 4차 산업혁신선도대학 사업에 선정됐다는 문자다. 61개교가 지원해 20개교가 선정되었으니 3대 1을 넘는 쉽지 않았던 경쟁이었다. 당장 보도자료를 써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집필진의 한 사람으로 사업 선정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지만, 앞으로 해야할 일의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다. 사업 준비에 밤 새는 일이 많았던터라 걱정 아닌 걱정이 샘솟았던 것이다. 선배 교수님도, 교차된 생각은 마찬가지. 이제 반 학기 동안 10억 원을 써야하고, 각종 보고서와 장비 세팅에 밤 샐 일이 더 많아질지 모른다는 한탄. 대학시절(90년대..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주로 9주차 수업을 맞이한다. 지난 주 까지만 해도 실험실습실기를 기반으로 한 수업의 경우 면대면 수업이 확실시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이태원 쪽 66번 감염자 및 접촉자들의 확산에 따라 주말 사이에 불안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당장 이번 주 수요일 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필두로 단계적 개학을 이어간다는 교육부의 방침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실험실습실기 수업의 경우 오늘, 즉 월요일부터 개강을 허락했지만, 전날 학교 본부와 관련 전공의 비상대책이 오랫동안 이어진걸 보면 갑론을박이 많았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오전 9시에 예대신관에 들어오니 부총장님과 학장님이 조교선생님들과 도열해..
2020년 5월 8일 금요일. 이제 정신을 차린다. 기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2020년) 3월 2일 새로운 곳에 들어왔다. 특히 2월 중하순 부터 열심히 달렸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한국연구재단의 LiNC+ 사업), 4월 27일 제출에 이어 어제(7일) 사업 요약본 제출로 2달 반의 프로젝트 여정이 끝났던 것이다. 그래서 한 숨을 돌리게 되었다. 방송국에서 15년을 일했다. 그러다 16년 차가 되던 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쩌다 보니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어색하고, 부끄럽고, 내 자리가 맞나? 의구심도 들었다. 어쨌든 청주에 소재한 한 대학의 전공 조교수가 내 첫 직함이더라. 지난 2월 중순, 전 직장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통의 전화가 울렸고,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