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88)
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앞으로는 탈 물질성, 즉 브랜드가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물질은 보다 힘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리적이지 않은 것, 요컨대 정서와 감성 등을 자극하는 정신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서비스나 브랜드 등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편지각과 개별지각의 결합, 아이콘- 보편지각(common perception)과 개별지각(individual perception)의 결합, 아이콘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대상을 지시한다. 지시받는 대상은, 사물의 보편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형태와 의미의 관계 맺기를 통한 사물의 지시작용이다. 만약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잘못된 관계 맺기를 하거나 보편 범주를 벗어난 지칭으로 표현할 경우, 정상적 커뮤니케이션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탁자 위에 토끼가 앉아 있다. 발신자는 그것을 보고, “탁자 위에 도끼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만지라고 말할 것이다.”하고 말을 하게 된다면, 수신자들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사래를 치게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음 실수를 통한 발신자-수신자 사이..
보편지각에서 개별지각으로 - 보편지각(common perception)에서 개별지각(individual perception)으로 보편지각은 선험적이지만 개별지각은 후험적이다. 후험적인 것은 주체의 경험에 편향되어 있다. 그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상식적이지도 않다. 개별지각은 주체의 해석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옥수수를 보고 북한의 미사일을 떠올리고 있었다면, 그것은 주체가 대상을 해석했던 후험적인 경험을 통해서였을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과 옥수수는 공사적인 인과관계에 놓여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이 옥수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인식 주체의 통사적인 해석관계를 통해서다. 통속성은 개별적이며 후험적이다.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공속성과는 다르다. 가령 담..
보편지각과 개별지각- 보편지각의 '원형(prototype)'을 찾아서 이런 가정을 해 보자. 인류는 화살표라는 기호를 모른다. 그런 인류가, 화살표라는 기호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화살표가 방향을 지시하는 기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혹은 삼각형과 닮은 화살촉의 모양이, 무엇을 베거나 찌를 때 보다 효과적인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인류 최초의 문명지대가 서로 만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하더라도, 그들은 손가락을 이용해 방향을 지시하거나, 예리한 삼각형을 만들어 화살촉이나 칼의 모양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명은,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을 공통적으로 사유했을 것이다. 일정한 공동체가 유지되는 인류에게는, '보편지각(commo..
왜 디자인 시대인가? "트럭 운전사는 고속도로 위에 있을 때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은선처를 가질 수는 없다. 일하는 여성은 방적 공장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거주하기 위한 장소를 그곳에 마련할 수는 없다. 우수한 기술자는 발전소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거주할 수 없다. [중략] 거주를 위한 건축물들은 사실상 어떠한 은신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집들은 단지 계획되고 쉽게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값싸며 빛, 공기, 태양에 열려 있으면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집들 자체는 어떠한 거주하기를 생산할 수 있는 조금의 확신도 주지 못한다." (Heidegger, , 1971, P. 145~146) 일절.오늘날의 우리는, 먹는 것과 입는..
한 달만 버텨보자는 생각이, 넉 달을 넘더니 두 해를 넘기더군요. 그렇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침 산행길 가운데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이어트는 아니었습니다. 몸무게는 오히려 조금 늘어나 있더군요. 육체의 그런 것들 보다는, 오히려 정신의 가치가 가장 큰 수확물로 다가오게 되었답니다. 복잡했던 일상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습니다. 잊고 있던 과거의 미해결 숙제들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더니 산행 가운데 자연스럽게 해결점을 찾아내고 있었어요. 분노의 사건은 이해로 바뀌면서 심리적 화해를 이뤄내는가 하면, 저 스스로의 반성적 사유도 이끌어 내더군요. 그와 같은 마음의 안정들은, 우선 두뇌를 평안하게 만들어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었습니다. 저로서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정신적 ..
그래서 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부나, 일정거리를 걸어서 출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실의 한계가 생성한 어떤 대안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예요. 대수로울 것은 없었습니다. 작게는 살을 뺀다는 생각에서부터, 크게는 사색을 통한 삶의 지표정도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 정도였어요. 총 거리는, 어림잡아 3킬로미터 정도였습니다. 연희동 안산 자락길 입구에서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버스정류장 후문까지. 그 외는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여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걷기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산행길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따라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엄혹한 날씨에서는, 질고 미끄러지는 산길을 걸으며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자는 타협이..
그런 속상함 만이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약 일 년 전부터 동네 앞에서 버스 타는 것을 지양했습니다. 정확하게 설명을 하면, 지난 일 년 동안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출근했던 날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적었던 거지요. 대신 집 앞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출근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선택하기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실의 한계가 결정짓는 어떤 조건은, 언제나 한계 너머의 특별한 대안을 창출해 낼 에너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피 실험자인 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버스도착 알림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만약 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버스도착 알림 서비스를..
제가 사는 동네에는 전철이 다니지 않아요. 그래서 대게는 버스를 이용하고는 하지요. 그런데 버스가 지연이 되거나 하면, 기다리는 것이 함흥차사라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버스의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는 저로서는, 스마트폰을 소지할 것 같지 않으신 몇몇 노파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는, 버스가 오는 방향만 망연히 관찰하게 됩니다. 그러다 일련의 승객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몰려들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신묘하게도 버스가 귀신같이 도착을 해 버립니다. ‘일련의 승객’들은, 아마도 버스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소지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십여 분 이상..
단순한 것은 투박하기 마련이예요. 그런 투박함이, 아날로그 전화기의 수신음을 무척이나 단순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종전에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무선인터넷 전화기의 수신음이 그렇게나 듣기 좋았던 것이었는지, 아날로그 전화기의 수신음을 확인하는 순간 곧바로 알아챌 수가 있었지요. 아날로그 전화기의 수신음은, 그저 “따르르릉”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볼륨을 줄여도, 연방한 소리는 귓전을 거북하게 만들고 말았지요. 이가 없으니 잇몸이라, 우리부부는 그 소음에 순응해 버리자고 최면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