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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뭘 하고 싶냐고 묻는다. 드립 커피가 모락모락. 로스팅 기계는 멈춰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높은 곳에 올라가 인류 멸망을 지켜보고 싶다, 라고 싱겁게 말해버린다.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자 여자는, 전 사랑을 하고 싶어요, 하고 대답한다. 사랑, 박애, 긍휼 등은 감정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이 준 혜택 가운데 하나다. 사랑, 아니 감정의 흐름조차 없었다면, 인류는 존속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멸망이 정해져있다. 그리고 뭘 할 것인가? 시한부 삶이 인류에 공히 내려져 있다면, 기쁨 희망 등은 자멸 하고 말 것인가? 또는 희락, 애락 등의 감흥 놀음만 지천을 지배하고 있을 것인가? 고고한 감정이나 쇠잔한 것들이 사방에 존재해 있다면, 어떻게 보아도 그런..
David Hall의 세 번째 전시. 삼청동에 위치한 코너갤러리. 작다. 정말 작다(3.5평) 입구가 따로 있지 않다. 전면 유리로 관람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 작다고 쉽게 볼 순 없다. 금싸라기 부지라, 모 건설사가 매입, 갤러리 형태로 운용한다는 전언(사실 확인 필요), 정확한 위치는 정독 도서관 내리막 부근. 데이빗은 이 갤러리에 특혜를 받는다. 오는 2010년 마지막 달까지, 무상으로 전격 임대 받게 되는 것이다. 그의 CS process는 이곳에서 열 두 가지 형태로 매달 variation 될 예정이라고. 좋은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게 돼 뿌듯하다. 기쁨은 나누면 절로 배가 되는 격이다. 당초 우려와 달리, 코너갤러리 형태의 대안 스페이스도, 나름 장점이 큰 것 같다. 오롯한 자태..
작업실 단장을 하고 있는 선미 작가. 산울림 소극장 옆. 단촐한 심경으로 새 공간에 적응하고 있던 중, 급작스런 방문. 그녀의 소재는 주로 사과다. 아니 전적으로 사과다. 그것도 피 흘리는 사과. 작품 중 사과끼리 깨물어 피 흘리는 작품도 있다는데, 독특하다. 일전 어느 호주 영화의 좀비 소재는 양이었다. 사과 좀비라면 양은 무색해지고 말 것 같다. 소재 면에선 좀비든 작품이든 간, 탁월한 선택일 수 있다. 무사처럼 칼 휘두를 기세로, 작가가 파인더를 들여다 본다. 붓을 들고 일획 해 볼 자세.
시기도 된 지라 일요일, 느즈막한 저녁 홍대 주변을 배회했다. 산울림 소극장 부근에 있는 작가 작업실도 기웃거리고 갤러리 행색으로 보이는 어느 빈방, 또 1000/60 이라는 타이틀의 월세 뉘앙스 갤러리도 들여다 본다. 마땅한 장소가 없다, 전시 공간. 우스개로 그랬다. 주차장도 이 면적이라면 좋을 텐데, 하고 보도 가로 아무렇게나 있는 차고를 가르키며 말했다. 머리는 벌써 솟아, 펼쳐진 전면 유리가 장면을 구상했다. 그러니 주변에 뵈는 건물 보다는, 이제는 조그만 면적, 말하자면 삼청동의 코너 갤러리 쯤의 대안식 장소가 눈 앞에 부상해 버리는 격도 되었던 것이다. 어스름 달빛이 떴다. 공기가 차다. 춘 삼월 내일이 봄인데, 여직 한기는 가득하다. 성현과 '요시'라는 일식 라멘집에 들어갔다. 한사발 뜨끈..
혼자 있는 조용한 방, 적막한 소리가 소음을 만든다. 공기가 없다. 부유하는 것은 먼지, 그리고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대자로서의 나. 몸을 벗어난 어떤 생각은, '너는 누군가' 하는 지점으로 회귀해 간다. 바쁜 일상, 소란한 물질이 사방을 감싸면, 존재에 대한 사유는 표피를 뜯고 활개친다. 그러나 침잠하는 혼자만의 방으로 되돌아 오면, 조용한 사방이 나즈막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무덤을 판다. 무저갱, 그리고 껍질. 창문을 열자 차분한 바람이 분다. 얼마나 유약했던지, 그나마 몸을 덮고 있던 표피는, 입김 바람만에도 훌훌 떠나가 버렸다. 남은 것은 벌거 벗은 무덤 위 나. 그리고 당신의 눈 뿐이다.
Exhibition Info (group) V for YTN (video installation with AR_Argument Reality) / Subject : Physical media / Gallery Media + Space, Seoul, Korea / 20091224 ~ 20100102 / 7 artists will be installing physical media stuffs Preface and research note David Hall을 포함한 아홉 명, PM2 라는 제목으로 연대 미디어스페이스에서 전시를 가졌다. 연말,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향했는데, 방학인지라 교정은 을씨년스러웠다. 눈이 내릴 법한 납빛 하늘, 번잡한 설치 오브제 등을 이고 몇 번에 걸쳐 미디어스페이스를 ..
Exhibition Info (solo) 1984 and frame 'in Yoksam' (Mixed media, Pigment print on German-eching) / GS the street gallery, Seoul, Korea / 20091110 ~ 20091201 / Jungho Suh 1st solo exhibition Preface and Artist note 지난해 11월, 역삼동 GS the street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보라누나(전시 큐레이팅)의 격려와 도움이 컸다. 면 당 하루 수 십여 만원을 넘는데, 여섯 개 면에 한 달 대관이니 실제 가격은 상상을 넘는다. 그러나 요행히 전시는 초대전 형태로 기획됐고, 비용 면에선 전격 부담을 덜게 됐다. 보라누나의 후원..
소재를 떠올렸다. 1984개가 든다. 많다. 또 버겁다. 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촌각 다투는 입장에선 무리 있는 편이다. 그래도 1984개를 만든다. 해야한다, 행위의 숭고도 그렇지만 차용하는 면에서는 그 대상에 면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살을 부린다면. 새벽 3시를 넘기고 있다. 장을 마련해 둔다는 것은 품이 든다. 시간이 들고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면, 쟁여놓은 갯수를 펼쳐 놓으면 되는 것이다. 자 이렇게 훨훨, 난장으로 이천여 개의 마당을 깔아보는 것이다, 어스름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