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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일상적인 것에 신이 있다. 신은 그 모습을 특별한 것에 감추지 않았다. 파스칼은 모든 것의 합으로서의 신을 모나드라 불렀다. 무수의 실체인 모나드는 보잘 것 없는 이끼나 조악한 해초의 틈새, 그리고 매양 떠 있을 것이라는 태양과 구름 등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 폭넓게 확장되어 있다. 단토(Arthur Danto)는 이라는 책에서, 단순한 하나의 사물이 예술로 변화되는 사건에 주목했다. 예술이란, 단토의 시점에 따르자면 후기 예술사 시대(post-historical period of art)에 이르러 철학의 질문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예술이 유사(resemblance)의 재현이라는 모사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때, 비로소 세계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파악했던..
Publishing codes for the '1984frame' series 내 작업의 세계관은 '1984'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작업은 따라서 '1984'로 부터 출발을하고 끝을 맺게 된다. 작업의 형성물은 총 1984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코드는 #nnnn의 배열에따라 정수로 규정된다. '1984'는 크게 세 가지 소재로 구분된다. 첫 번째 소재는 그랜드 오프닝을 알리는 '1984'로서 1984의 개념을 설명하는 소재다. 두 번째 소재는 첫 번째 개념 이후의 것으로서 에페스테메를 엿보는 'Beyond the frame'이라는 소재다. 세 번째 소재는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이후로서 연속적으로 생성될 수 있는 형성물에 대한 지적생활의 메모로서, 텍스트로 구성되는 'Memo'의 소재..
잠 깬 도시민이 있다. 잠 깬 도시민은, 시끄러운 도심과 죽은 듯이 보이는 새벽을 걸으며, 쓰레기 더미를 뒤척이고 있다. 그가 보는 쓰레기 더미는, 이틀 전 먹다버린 스타벅스의 일회용 컵이며, 오늘 아침 읽고 버린 조간신문 등으로 빼곡하게 구겨져 있다. 잠 깬 도시민이 찾는 것은 시대의 증거다. 도시의 쓰레기 더미는, 일정한 상사를 그리며 도심 이곳저곳으로 상징을 담지하고 있다. 그러한 상징이 남긴 흔적의 상사들은, 시대의 증언을 내포하며 그 스스로가 보잘 것 없는 쓰레기 더미로 변용(transfiguration)되고 있다. 즉 교묘한 수법으로 은닉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잠 깬 도시민이 찾는 것은 변용 전의 증거다. 그 증거는, 비트겐슈타인의 용법에 따르자면 동족유사성(family ressemblance..
Artist note 반영 그리고 기념이다. 친구 L에게 시사를 했다. 반영은 자연과 닮았고 기념은 도시와 닮았다. 하나는 과거를 살고 다른 하나는 현재를 산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가상과 실재가 혼동되는 시뮬라크르만 상기했던 나로서는, 조금 다른 시각에 흥미있는 사고실험이 떠 올랐다. 눈 앞, 노송이 우거져 있다. 새벽을 깨는 일출이 나무들 틈새로 빛을 비추인다. 그리고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의 향연들. 그것은 멀리 연희동이 내려다 보이는 고공에서의 시선과 마주해, 마치 숲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건축물과 같아 기묘하게 연결됐다. 모든 것은 서로 통하기 마련이다. 하나의 티클에서 탄생한 우리로서는, 그것이 자연이면 노송이요 인공이면 시멘트의 한 덩이 조각에 불과한 것을, 사람도 자연도 그런 연유에서..
Sound 0050/ 1984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지옥이야. 세계는 본래의 완벽한 정곡에서 불완전한 정점으로 이동하고 있어. 시간은 거스를 수 없잖아? 왜냐하면 비가역적 속성 때문에 그런 거지. 시간 이전의 모든 존재는 하나로부터 출발했었어. 그렇게 되고자 하는 섭리로부터 출발했던 거야. 그것은 일종의 개념 같은 것이었어. 마치 화가의 그림 그리는 행위 이전의 상상력 같은 것 말이지. 근자는 그 섭리가 정신에서 물질로 이동하기 시작했어.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최초의 신은 정신과 물질 사이의 상생이 유지되길 바랐었나봐. 그들에게 합의된 목적을 주입시켰고 한곳을 향해 달려가길 원했었겠지. 신은 대의적으론 정신에게 주도권을 단기적으론 물질에 주도권을 쥐어주었어. 그리고 티켓을 끊어줬지. 되돌아올 수 ..
Sound 0049/ 1984 이별은 아파요. 무거운 시계가 가슴 깊이 박혀있어요. 시침이 분침을 때리면 그 예봉이 가슴을 찔러요. 선혈 없는 고통이죠. 멀쩡한 육신의 벽돌이 나를 감싸 난 정상적인 미치광이가 되고 말아요. 벽돌은 견고한 감옥입니다. 소년은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난 말없이 전방만 바라보고 걸었다. 무색한 반응에 소년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듯 했다. 그럴 때면 난 앞을 보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연의 아픔을 알아요? 실연. 여전히 내게도 무거운 소재다. 아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그처럼 무거운 소재를 들이밀곤 했다. 난 모르쇠로 묵살한다. 미소 짓기도 한다. 어른들의 넉넉한 표정에 아이들은 동경을 가질 것이다. 하반 엉덩이로 소년의 심장이 느껴지지만 그것에 관심 두려 돌아보진 ..
Sound 0048/ 1984 가을이 왔다. 지난겨울, 포장마차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은, 한 계절이 지나면 또 다시 그 때 옷을 꺼내 입을 것이다. 매섭던 바람이 불었다. 얼음보다 차갑던 겨울 심경도 있었다. 뜨겁던 노래는 찾아와 그것을 녹일 요량으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사람들은 노래와 노래했다. 차갑던 겨울 방축은 조금씩 사라져 따스한 초봄을 맞이하는 듯 했다. 도적 같은 여름은 지나가고, 어느새 코끝을 스치던 청아한 가을바람. 네 번째 계절을 남기면 지난겨울의 노래는 우리를 되찾을지 모른다. 변한 것을 찾으러. 없다면 지난 일 년의 한기는 설움만 연주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위하여 노래하고 있었습니까? 노래는 물을 테지만 그것은 사람의 입을 막고 스스로 대답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하고 ..
Sound 0047/ 1984 동산에 앉았다. 올해 봄은 유별나다. 꽃이 피었던가 싶더니, 봄 싹 꽃 등이 주변에 지천이다. 기분은 뭐 그렇다 해도, 여전히 겨울 같은 마음. 얼었던 신년이 왔던가 했더니만, 화려한 춘 사월 봄은, 우리 곁에 성큼 와 있는 것이었다. 꿀벌 한 쌍이 벚꽃에 앉았다. 침착한 걸음을 걷다,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스스로 제도가 돼야지, 하고 입을 연다. 나는 광포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벚꽃을 꺾고 꿀벌을 내 쫓는다. 유난히 느낄 수 없던 이 봄은, 나이가 들수록 미약해져버리는 성탄절 감흥과 닮아, 어쩐지 슬프고 또 침울했다. 심경이 바쁘면 정신도 황폐해지니, 반응이 느려, 기어이는 당찬 동공 외엔 어떤 것도 시선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충 고개를 들면, 나는 어떤 ..
Sound 0046/ 1984 모든 것을 가졌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잃었다. 어찌할 수 없는 완벽으로의 존재. 지루한 공리에 그는 침잠했고, 또 비상했다. 미칠 듯 나른한 권태의 골몰은, 우주 곳곳을 기웃거리다, 사람과 마주했다. 그는 진실의 표상을 인간의 오른 날개 아래에, 거짓 표상을 왼쪽 날개 아래에 아로 심었다. 눈 뜬 사람은 바다를 헤엄쳤다. 초목을 거닐었고, 또 삼나무를 올랐다. 본질로서의 회귀, 날고 싶은 욕망은 신의 거울처럼 발아돼 있었다. 사람은 서로의 등짝을 매만졌다. 있을 것 같던 날개는, 그러나 없고, 조악한 깃털만 음부 어귀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매끈한 남녀 육신은, 서로의 동공에 반사 돼, 새까만 동굴 속을 지상의 노스탤지어다 단언해 갔다. 그러나 아니다. 향수는 천상에 있었고,..
Sound 0045/ 1984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음정. 그러다 일상으로 되돌아와, 나는 도회지인의 채근하는 신발에 맞춰, 소리를 잊는다. 퇴근 하행전철은 무겁다. 육중한 쇳소리가 울리고, 황망하게 스쳐가는 도심의 불쏘시개. 지친 객석 좌석은, 더 지친 직장 남녀의 피로를, 에둘러 엎고 있다. 조야한 초승이 머리에 떠, 춘 삼월 야심도 입김은 여북 사람을 감싼다. 나는 심려를 풀고 혼자만의 방으로 되돌아간다. 아이의 치기가 이럴 땐 필요하고, 하여 모체의 자궁에 들어가는 심경으로, 문을 닫아 구석에 앉는다. 한낮 비대하던 일상은 꿈이 됐다. 어떤 것이 본래적 삶인지 궁리되고, 일전의 삶은 망각됐다. 내 등은, 카멜레온처럼 몇 색으로 변환된다. 꿈을 꾸자.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