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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삶/청주대학교에서

일-복과 일-폭탄, 그 한 끗 차이.

스티붕이 2022. 9. 27. 10:14

2020년 5월 12일 금요일.

 

이른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오전 8시. 자리에 앉자마자 메시지가 요란하다. 우리 과제가 교육부 4차 산업혁신선도대학 사업에 선정됐다는 문자다. 61개교가 지원해 20개교가 선정되었으니 3대 1을 넘는 쉽지 않았던 경쟁이었다.

 

당장 보도자료를 써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집필진의 한 사람으로 사업 선정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지만, 앞으로 해야할 일의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다. 사업 준비에 밤 새는 일이 많았던터라 걱정 아닌 걱정이 샘솟았던 것이다. 선배 교수님도, 교차된 생각은 마찬가지. 이제 반 학기 동안 10억 원을 써야하고,  각종 보고서와 장비 세팅에 밤 샐 일이 더 많아질지 모른다는 한탄.

 

비대면 사업발표 리허설. 팬데믹으로 인해 사상 첫 비대면 발표로 사업평가가 이루어진다. 관련 작업(QoE나 Band width 등 네트워크 연결 및 보안 등)으로 한국연구재단도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던 상황.

대학시절(90년대 중후반), 교수님들이 그렇게 편하게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보니, 이전 대학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종 대학사업, 연구과제, 산학과제와 행정업무, 심사, 봉사, 교육 등 어느 것 하나 손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그만큼 집중해야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러니 밤을 새기 일쑤. 게다가 다가오는 개인 실적 평가의 시기 등.

 

아내는 내게 "성과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며 기뻐하듯 말했다. 글쎄, 내가 한 일은 적다. 9명의 교수님들이 무거운 짐을 나눠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그저 막내 교수로서 해야할 잡무 따위를 했을리 뿐이다. 그래도 아내의 칭찬은 다른 의미로 기쁘고, 그녀의 인정은 언제나 달다.

 

뭐 어쨌든 바쁜 얘기로 돌아가면, 줌(Zoom)을 활용한 온라인 강의도 만만치 않다. 수업 준비, 교안 작성, 출결, 과제물 피드백과 기록된 영상을 간단히 편집해서 LMS(일종의 교육관리시스템) 올리는 작업 등(네트워크 부화로 지연될 때가 많다). 이 모든 일은 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에 이루어지는데, 공교롭게도 사업선정에 발표된 날이 금요일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해서 늦은 저녁이 되는 지금, 저녁을 굶고 바쁜 날과 나를 마주하고 있다.

 

험난하고 힘든 조교수 생활이지만, 그래도 언제 이런 막내 교수 생활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즐기세요. 웃으면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세요." 이대 유승철 교수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그리고 주변에 밥을 마음 껏 사줄 수 있을만큼 자립하시고요(즉 얻어먹지 말라는 의미로)." 작금의 부담에는 유 교수님의 조언이 제격이다. 일 복(폭탄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앞에서는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것 만큼 뛰어난 방안은 없다. 일-복과 일-폭탄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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