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교수님, 퇴임하고 뭐 하세요? 본문
오늘 교내 게시판에 한 교수님의 부고 소식이 떴다. 본인상이다. 언제 퇴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을 떠나 명예교수로 계셨던 분이다.
청주에 거주하여, 정확히 말하면 교수가 되고나서, 교수 퇴임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퇴임한 교수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실까? 최근에 느꼈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소회를 전하고자 한다. 교수가 되고 나서, 학부 시절 은사님을 몇 분 만나 안부를 여쭈었던 적이 있었다. 디자인의 원리원칙에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A 교수님은 “퇴직한 다음엔 디자인? 그거 보지도 않아. 자네도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하고 조언하듯 말씀하셨다. 총기 가득하던 눈빛은 흥미 잃은 어린아이의 눈빛처럼 변해있었다. 서슬 퍼렇던 40대 중반의 교수님은, 당시 신입생이었던 내게 F학점을 주셨고, 졸업학기 때는 D학점을 주셨다. 덕분에 학사경고도 두어 번 받아봤고, 졸업학점은 형편없이 낮았다. 뭐, 그래도 이해했다. 그렇게도 엄하셨던 교수님은 이제 초로가 되어 술잔을 부딪친다. 또 다른 B 교수님은 김포에 거주하며 열정적으로 살고 계셨다. 80의 고령에 다다른 B 교수님은 강원도며 충청도 등 전국 각지를 돌아 예술 분야 심사에 열의를 올리고 계셨다. 그는 내게 “C교수 알지? C교수는 지금 독일에서 손자들 봐주고 있어. 퇴직하면 뭐 남는 게 있나? 자식들 걱정은 죽을 때까지 계속 돼”하고 유쾌하듯 말하며 다른 퇴임 교수님의 근황을 전해주셨다.
올해 초 같은 단과대학의 D 교수님이 퇴임하셨다. 퇴임한 해당 학과의 가까운 교수님께 “요즘 그 교수님은, 어떻게 지내세요?”하고 물었더니, “나도 잘 몰라요” 정도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학교에 그런 교수님이 계셨던가? 하는 회회한 분위기. 또 한 번은 내수읍에 위치한 미술관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 미술관의 설립자는 같은 단과대학을 정년퇴직 하셨던 E 교수님이 건립하셨다. 그 내용을 미술관 설립 취지를 읽고서야 알게되었다. 학교에 되돌아 와 선배 교수님께 E 교수님의 미술관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그 양반 참 바지런했지. 땅도 사고 거기다 미술관도 세우고 말이야"하고 회상하듯 대답하셨다. E 교수님은 퇴임 이후에 지역 내 미술관 설립을 목표로했고, 지금과 같이 아담한 미술관을 잘 운영하고 계셨던 것이다.
퇴임 이후의 삶에 대한 목표는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할까? 몇 달 전, 다른 단과대학교의 F 교수님이 내 연구실을 방문했다. 유튜브 운영에 관한 전략을 알려 달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F 교수님께 "교수님은 일 끝나고 뭐 하실 거예요?"하고 지나가듯 물었다. 그 교수님은 단 번에 "대학교를 설립할 겁니다"하고 대답을 하셨다. 적이 놀란 나는, "아니, 그게 가능합니까?"하고 놀라듯 되물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교수님의 반응이었다. 그는 내게 PDF 파일을 보여주면서, 대학교 설립을 위한 10년 간의 로드맵을 설명했다. 게다가 그가 꿈꾸는 대학이, 지역 내 시민들의 참여형 대학으로 기존 대학들과 차별화 되었음은 물론이고, 설계방향도 매우 정교했다. F 교수님은 내게 "앞으로 교수님도 이쪽 사업에 도움을 주셔야 됩니다~ 껄껄껄"하고 사람좋게 웃으면서 PDF 파일을 접으셨다. 나는 그의 로드맵을 보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체적인 준비란 이런 거구나' 하고.
마지막 사례이다. 약 10년 전. 연희동에 소재한 아파트를 매도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 집을 산 사람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의 G 교수님이셨다. 나는 당시 연대 박사과정에 있었던지라, 교수-학생의 신분이 아닌, 매도자-매수자 신분으로 부동산에 마주한 우리들은 참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겸연쩍은 분위기도 깰 겸 “교수님, 혹시 이 집에 거주하시려고 구매하시는지요?”하고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은 머뭇거리며(정확히 말하면 웅얼거리며) 대답을 이어 가려던 차, 곁에 있던 교수님의 사모님이 답답한 듯, “아뇨, 이제 이 사람이 내년에 정년퇴임을 해요. 그래서 이 사람 혼자 학교 연구실처럼 쓰게 하려고요”하고 예의 우렁차게 대답하셨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아, 예”하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을 흐리고 말았지만, 어쩐지 복잡한 심경은 지울 수 없었다. 퇴임 교수의 삶이, 그냥 쓸쓸해 보였다.

대학교를 졸업한지 20년. 대학교에 부임한지 3년. 남은 교수생활 20여년. 20년이 훌쩍 지나간 것 처럼, 20년 이후도 훌쩍 올 것 같다. 그래서 퇴임한 이후의 삶은, 오늘과 같은 부고문으로 경각심을 일깨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되돌아 가 보자. 퇴임한 교수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정리해 보면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내포하는 알람이다. “교수님, 교수님은 퇴임 이후에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계십니까?” 만약 그 목표가 정교하고 구체적이지 않다면, 그의 삶은 삶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 기존의 동력을 상실한 채 공전 주기를 벗어나고 말 것이다. 반대로 그의 목표가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이면, 그 삶은 양자-도약과 같이 새로운 공전궤도를 만들기 위해 하이퍼-점프 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목격했던 퇴직 이후 교수님들의 삶은 1) 주어진 대로 살거나 2) 목표했던 것을 이루거나 3) 그냥 잊혀 지거나, 대략 그 정도였던 것 같다. 뭐, 언론인으로 15년 이상을 살았던 업력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타자로 관찰하려는 이 습성이 퇴직 이후의 삶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다니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이런 르포르타주가 있을까? 어쨌든, 경종이 울린다. 일찍이 폴 부르제(Paul Bourget)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경고했던바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누군가 내게 "교수님, 이제 퇴임하고 뭐 하실 거예요?" 하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사업계획서를 열어 보이리라!(물론 쉽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