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왕자의 죽음, 거지의 부활 : 빵공장 사망 여성 노동자를 기리며 본문

교수의 삶/청주대학교에서

왕자의 죽음, 거지의 부활 : 빵공장 사망 여성 노동자를 기리며

스티붕이 2022. 10. 26. 13:03

일찍이 세익스피어는 “거지가 죽을 때는 혜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왕자가 죽으면, 하늘은 알아서 불꽃을 뿜는다”고 덧붙였다. 세익스피어가 살던 중세는 왕자나 귀족 등 지배계급이 평민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를 지나 한 개인을 위대한 인물로 바라보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개인은, 늘 사회 속에 속해 있으면서, 평범한 인간생활의 범상함이, 언론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의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형식들에 의해 사회로 녹아든다. 그리고 사회에 스민 그 흔적들은, 공분의 공론장을 만들어 대중의 정념을 자극한다. 이 시대에 왕자는 죽고, 그 자리에 폭발해야할 불꽃은 희생양이 되어버린 개인에게 작렬한다. 따라서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오늘날의 큰 비극은, 개인보다 사회와 관련되어 있다는 러셀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의 거대한 비극은,
개인보다는 오히려 사회와 관련된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P.47

 

 

최근 평택 반죽공장서 사망한 20대 여성 노동자의 죽음은 그 자체로 사회적이다. 그녀는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로, 이른 아침이던 오전 6시께 배합기계에 끼인 채 주검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혼자 근무했다. 부르고 소리질러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 공포는 얼마나 컸을까? 차가운 기계는 그녀를 삼켰고, 뜨거운 외침은 허공에 스몄다. 언론은 이 사건을 사방으로 전파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한 개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전유되었다. 대중의 정념은 불꽃을 만들어 보이지 않던 혜성을 불러냈다.

 

경기 평택시 SPL 평택공장에서 사고가 난 동일한 기종의 소스 교반기. 참고로 이 공장은 하루 약 38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 2014년. 나는 한 방송국에서 새로운 사옥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혼의 50대 남성이 건축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사고소식을 들었다. 사망현장을 찾았던 한 선배는 그 주검을 확인한 다음, 그의 팔에 낀 토시를 보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공사현장이 한창이던 건물 6층에서 떨어져 사망을 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간 역시 이른 아침이던 오전 6시였다.

 

모든 사람들이 들었을 . 몸을 쓰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 생산 현장으로 떠난다. 새벽 별이 여직 있는 시간. 우리들은 안온하게 잠들어 있다. 지난 중세가 왕자의 불꽃을 사방으로 터트렸다면, 지금 시대는 개인의 죽음과 그것을 조망하는 매체의 확성 유무에 따라 불꽃을 크거나 작게 터뜨린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비극을 알기 위해 비극을 느껴야 하고, 비극을 느끼기 위해 피와 살을 움직여 사회를 경험해야 한다. 개인으로 가득찬, 금빛으로 가득찬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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