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왕자의 죽음, 거지의 부활 : 빵공장 사망 여성 노동자를 기리며 본문
일찍이 세익스피어는 “거지가 죽을 때는 혜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왕자가 죽으면, 하늘은 알아서 불꽃을 뿜는다”고 덧붙였다. 세익스피어가 살던 중세는 왕자나 귀족 등 지배계급이 평민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를 지나 한 개인을 위대한 인물로 바라보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개인은, 늘 사회 속에 속해 있으면서, 평범한 인간생활의 범상함이, 언론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의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형식들에 의해 사회로 녹아든다. 그리고 사회에 스민 그 흔적들은, 공분의 공론장을 만들어 대중의 정념을 자극한다. 이 시대에 왕자는 죽고, 그 자리에 폭발해야할 불꽃은 희생양이 되어버린 개인에게 작렬한다. 따라서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오늘날의 큰 비극은, 개인보다 사회와 관련되어 있다는 러셀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의 거대한 비극은,
개인보다는 오히려 사회와 관련된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P.47
최근 평택 반죽공장서 사망한 20대 여성 노동자의 죽음은 그 자체로 사회적이다. 그녀는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로, 이른 아침이던 오전 6시께 배합기계에 끼인 채 주검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혼자 근무했다. 부르고 소리질러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 공포는 얼마나 컸을까? 차가운 기계는 그녀를 삼켰고, 뜨거운 외침은 허공에 스몄다. 언론은 이 사건을 사방으로 전파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한 개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전유되었다. 대중의 정념은 불꽃을 만들어 보이지 않던 혜성을 불러냈다.

지난 2014년. 나는 한 방송국에서 새로운 사옥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혼의 50대 남성이 건축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사고소식을 들었다. 사망현장을 찾았던 한 선배는 그 주검을 확인한 다음, 그의 팔에 낀 토시를 보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공사현장이 한창이던 건물 6층에서 떨어져 사망을 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간 역시 이른 아침이던 오전 6시였다.
모든 사람들이 잠 들었을 때. 몸을 쓰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 생산 현장으로 떠난다. 새벽 별이 여직 떠 있는 시간. 우리들은 안온하게 잠들어 있다. 지난 중세가 왕자의 불꽃을 사방으로 터트렸다면, 지금 시대는 한 개인의 죽음과 그것을 조망하는 매체의 확성 유무에 따라 그 불꽃을 크거나 작게 터뜨린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비극을 알기 위해 비극을 느껴야 하고, 비극을 느끼기 위해 피와 살을 움직여 이 사회를 경험해야 한다. 개인으로 가득찬, 금빛으로 가득찬 이 사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