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15년 만의 이직, 짧은 시간과 긴 경험 본문
2020년 5월 8일 금요일.
이제 정신을 차린다. 기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2020년) 3월 2일 새로운 곳에 들어왔다. 특히 2월 중하순 부터 열심히 달렸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한국연구재단의 LiNC+ 사업), 4월 27일 제출에 이어 어제(7일) 사업 요약본 제출로 2달 반의 프로젝트 여정이 끝났던 것이다. 그래서 한 숨을 돌리게 되었다.
방송국에서 15년을 일했다. 그러다 16년 차가 되던 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쩌다 보니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어색하고, 부끄럽고, 내 자리가 맞나? 의구심도 들었다. 어쨌든 청주에 소재한 한 대학의 전공 조교수가 내 첫 직함이더라.
지난 2월 중순, 전 직장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통의 전화가 울렸고, 전화기 너머 합격을 축하드린다 말이 들려왔다. 그는 내게 "곧 공식 공지가 날 것이지만, 미리 전화를 드리는 이유는 추가서류 제출 때문입니다"고 말을 이었다. 고맙고 감사한 생각이 몇 초간 들었다. 동시에 회사에 퇴사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낮은 저음으로 온 몸을 울렸다. '큰 일이네. 진행하고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렇지만 퇴사를 결심했고 새로운 곳에 들어가기 위해 뜻을 세웠기 때문에 감당해야 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지만, 지난 해 가을, 잠자리에 들기 전,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말하자면 이런 기분(더하기 내용)이었다.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삶의 괘적이 정해진 것 처럼, 나는 머지 않아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하고 있을 것이란 이미지가 그려졌다. 그런 이미지(기분)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이고 어떤 대학인지 알 수 없었다는 답답함. 그 이후로 내 생활은 '임시'라는 단어로 공전하고 있었다.
이 대학에 온 이후로 시간이 느리게 갔다. 평소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경험은 관념이 됐다. 새로운 곳에 들어오니 적응할 것이 많았다. 한 선배는 내게 전화를 걸어 “3달이 지나면 적응 될거야"하고 위로하듯 조언을 구했다. 3달? 금방 갈 것 같았던 그 기간은 아직 3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을만큼 내게는 긴 시간이었다. 왜 그럴까? 새로운 곳의 적응은 무의식적인 과정이 아니라 모든 것 하나하나가 의식적인 과정이다. 내가 생활하고 활동하는 주변의 모든 것은 낯설기 때문에 학습해야했고, 기억해야했으며, 그것은 그스란히 두뇌에 강렬하게 인식되 듯 기록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간 익숙했던 무의식은 자리 잡을 공간이 없어졌고, 뇌에 들어오는 정보의 대부분은 새롭고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인 과정을 겪다는 것이라 생각됐다. 어제 전 직장의 한 팀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2년 전 경력직으로 새롭게 입사했던 보직 팀장이었다. 나는 그에게, “팀장님이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3달간 집에서 기절하듯이 잠을 잤다는 말을 이해했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팀장은 “제 말이 맞잖아요. 서 팀장님은 이직을 처음하는 거니까 그럴 경험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전 몇 번 이직 경험이 있어서 옮길 때마다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요." 그렇다. 이제 적응 석달 차에 들어서는 나로서는 시체처럼 잠을 자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종일 언제나 긴장상태다.
이곳 교수님들은 훌륭하다. 일도 잘하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미루지 않는다. 각자 할 일은 모두 열심히, 저마다 좋은 성과를 위해 경주를 한다. 그래서 배울점이 많다. 물론 각 교수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그래서 충돌이 날 것만 같은 불안한 광경을 목격한 적도 적지 않다. 교수사회도 직장사회와 그런 면에서 유사하다. 위계가 있고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세력을 달리한다. 학교 전체로 눈을 돌리면 그런 상관관계는 보다 극대화 될 것이다. 그러니 언론사나 학교나, 나아가 정치나 사회나 적지 않은 부분이 진영에 따라 구분되는 것은 유사한 것 같다. 뭐 이런 부분은 아직 새내기라 깊게 들어갈 부분은 아니겠지만.
봄이다. 어버이 날이다. 오늘은 어머님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 겠다. 내일 가족과 함께 방문하겠다, 형네와 함께 맛있는 고기를 사드리겠다. 추웠던 날씨는 송화가루를 날리면서 늦은 봄을 알리고 있다. 두어 달이 지나 이제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