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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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삶/가천대학교에서

이직 그리고 한 달, 이별의 변용

스티붕이 2023. 3. 31. 22:52
가천대학교 가천관에서 바라본 봄 교정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왜 착해질까? 봄이 되면, 꽃이 피면. 하얀 목련과 연붉은 벚꽃이 필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작고 조그만 손, 처음 안았을 때, 깃털처럼 가벼웠던 무게감.
 
점심을 먹으러 교직원 식당으로 향하던 길. 문득 하얗게 핀 목련과 벚꽃 나무들을 보면서, 연달아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남녀학생들은 삼삼오오 미소 지으며 걷고 있었고, 장난 끼 많아 보이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은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꽤 차분하게 변했다.
 
모두 다 착해 보이는 이 세상. 흡사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했던 득의만연 한 세계관이 무너지면서, ‘아, 아기는 이렇게 연약하고 예쁜 존재구나’했던. 숭엄했던 첫 만남. 원 기억. 깨진 오만함들. 봄에 핀 꽃과 새 순들은, 그 순간을 기억나게 했다.
 

나는 작고. 너는 세상의 일부이며. 우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가천대학교 바람개비동산 어귀, 상춘 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

 

 
가천대학교로 이직한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학교도 바뀌었지만 무엇보다 전공이 달라졌다. 이전 대학은 예술대학에 속한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였다. 즉 미대생들을 가르쳤다. 지금 대학은 사회과학대학에 속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이다. 이들은 언론사나 광고홍보 분야를 지망하는 사회학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분위기를 넘어 학과 분위기가 다르다. 뭐가 좋고 나쁜 건 없다. 그저 자세가 다른 느낌이다. 하나는 도제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 교육이 주를 이룬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복수, 부전공 학생들이 많아 구심력이 떨어지지만 원심력이 커서 많은 분야를 포괄하는 느낌이다. 따라서 거리가 멀면 설명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명료한 의사전달을 위하여 디지털 스케폴딩 방법을 수업형식에 가미한다. 학과나 학생들이 어떤 분위기일지 몇 주 동안 탐색하다가, 맡고 있는 여러 수업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아 괜찮은 방향설정이었다는 판단을 했다. 학생들의 참여도 좋았다. 5주차 수업을 맞이하면서, 뭔가 일단락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뭔가란 아마도 ‘변용’에 관한 불안감 아니었을까? 그저 학교를 믿었고, 또 학과를 믿었으며, 나아가 가천대 학생들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교실 문을 열기 전, 잠깐 동안 하는 기도도 힘이 되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니, 마음 한 구석. 청주대 제자들에겐 미안한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간혹 연락이 오는 제자들은 자못 놀라거나,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럴때면 서로 면구하고, 서로 시린 마음을 이런저런 말로 에두른다. 이들도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이기 때문에,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통한 낯선 이별은 처음 겪는 감정이라,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만 같다. 그러나 봄꽃은 이런 불안정한 감정선도, 그저 괜찮은 것이라며 면연하게 주장한다.

집은 아직 청주에 있다. 하지만 늦은 봄이 되면, 동서로 가르는 아름다운 무심천. 이 고장과도 작별해야만 한다. 참 짧았던 3년이었다. 동시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이번 3월이다. 3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면서, 상춘 상념들은 이렇게 새하얀 목련잎, 연붉은 벚나무와 함께 떠올랐다. 초봄이 왔고, 새 꽃은 피었다. 올해도 그렇게.

그러다가 가슴 한 켠, 타고르의 시구가 문득.
떠올르기도 했다.
 

침묵하라 나의 영혼아.
이 나무들은 기도하는 자들이다.
나는 나무에게 요청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 주오.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다.

Silence my soul,
there trees are prayers.
I asked the tree,
Tell me about God;
then it blosso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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