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첫 강의의 끝, 구형 폰의 끝 본문
2020년 7월 6일. 월요일.
교내 로비가 썰렁했다. 발열을 체크하던 조교 선생님들도, 줄을 서던 학생들도 자취를 감췄다. 방학이다. 지난 금요일까지 붐볐던, 물론 코로나 이전과 같지는 않았겠지만, 예대 신관 1층은 언제 그랬냐느 듯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가동을 멈췄던 엘리베이터도 움직였다. 4층 연구실 복도도 한산했다. 아니, 인기척이라곤 이 건물을 통틀어 나 혼자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조용했다.
오늘 새벽 00시를 기점으로, 그동안 쓰던 011 핸드폰이 모든 서비스를 멈췄다. 이른 오전,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 주 011서비스 안내 종료 고지서가 이전 집으로 간 것 같습니다. 지금 주소로 다시 보내줄 수 있나요?” 전화 상담원은 예의 상냥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비스 종료에 대한 추가안내를 위해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전환하는 부서에 연결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달라고 했다. 궁금했다. 서비스 종료를 경험하는 이 기분, 추가적인 절차를 한 단계 더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해당 상담원과 35분 간 상담을 이어갔다. 만족스러운 안내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011번호로 문자를 받아야 하는데, 새벽부로 서비스가 되지 않아 핸드폰 인증 자체가 안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안내를 담당했던 남성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방법을 찾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10분 간 통화를 하고 나서 011 서비스에 대한 후속 절차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번호는 군대 전역하기 전, 어머니가 처음 쓰던 번호다. 지금으로 부터 무려 23년 전 일이다. 군대 전역하기 얼마전 이 번호를 물려받았다. 외우기 쉬운 번호. 친구 범준이는 지난 주 전화가 와서, “다른 사람들 번호는 다 잊어버려도, 네 전화번호 만큼은 잊을 수 없다”며 농을 놓았다. 그랬던 번호를 23년 간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시적으로 011 번호를 쓴다. 통신사의 결정이다. 1년 간 유예하기로 했으니 이 번호는 내년 6월 30일까지 사용 가능하다. 그야말로 '한시적'으로 옛날 번호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아쉽다. 스마폰 없이 지난 10년을(2010년 12월 국내 처음으로 스마트폰이 서비스 됐다) 생활했다. 뭐 그런게 특이했는지, 지난 해(2019년) 12월,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는 사람 특집으로 한 라디오 방송에서 출연했다. 그러다 올 2월 들어, 스마트폰을 세컨드 폰으로 장만하게 되었다. 장장 십여 년을 스마트폰 없이 생활해 왔던 것이다.

거창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게나마 만감이 오갔다. 번호에 대한 추억 그리고 기술에 대한 생각, 기업의 이익실현에 관한 부분들까지. 7월 6일 월요일, 학교의 종강과 더불어 011 서비스도 종료되는 날이었다. 좀 지난 일이지만 지난 2019년 겨울 께, 전 직장에서 인터뷰했던 "2G폰으로 살아보니" 기사를 첨언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1376295?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