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첫 종강, 첫 청주 본문
2020년 7월 4일 토요일.
어제, 종강했다. 맡고 있던 과목 3개 강좌가 끝났다. 다음 주면 성적 입력하고 학생들 강의평가에 대한 답, 이곳에서는 CQI라고 부르는데, 그걸 온라인으로 입력하면 끝이 난다.
한 학기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첫 달은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정신 없었다. 교육부 지침은 매주 다르게 전파되고, 대학들은 개강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비대면 수업을 위한 네트워크와 서버는 증설에 증설을 했고, 신입생들은(물론 나 같은 신임교원도) 초유의 비대면 개강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물론 그들의 선배들이라고 경험해 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첫 달의 전쟁이 지나가고 둘째 달이 되었을 때, 시간이 무척 느리게 흘렀다. 이 말은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이 처음으로 재배치 되는 상황이라, 거의 모든 것을 의식화 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시간의 늘어남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아시다시피 익숙하면 무의식으로 전처리되고, 그렇기 때문에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석달이 지나가 내 삶의 시간은 기존 속도를 찾았고, 넉달이 지날 때 쯤에는 전 직장 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기분으로 종강을 맞았다.
청주라는 도시. 한강과 같이 남북을 가르는 것이 아닌, 세느강 처럼 동서를 가르는 낭만적인 곳. 하지만 나는 이곳 청주 생활이 힘들었다. 아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 도시. 새로운 일의 적응도 쉽지 않고, 방송국 선후배들과 또 다른 결의 교수 사회. 즉 인간관계도 어려웠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것이, 겨울과 봄을 지나, 비로소 7월의 여름을 맞이하여 조금 씩 해빙되는 기분 정도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곳에서 제법 씩씩하게 적응하고 있다. 우려했던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지 그것도 서울 촌놈의 서울살이에서 지방살이이라는 격차는 적지 않은 이질감을 던져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청주라는 '다소' 폐쇄적인 지역 특색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집 생활을 좋아하는 집순이에 고층 뷰를 선호하는 사람이라 이곳 생활도 좋아했다. 게다가 이른바 '디저트의 도시' 답게 먹을 거리 또한 풍부하다는 점도 아내의 취향을 저격했다. 또 아이들은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더라도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뭐 적응하고 안하고가 의미 없는 상황이었다. 막내는 이제 막 24개월을 지나고 있어 서울이나 청주나 힘들기는(부모의 밀착 케어가 필요한 시기) 매 한가지.
15년 넘게 다니던 방송국을 그만두고, 충격이 컸나 보다. 이전 직장 꿈을 자주 꿨다. 그래서 상암동이 그리웠고 방송국 사람들이 그리웠다. 전 직장의 사외이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고, 그런 핑계로 상암동엘 종종 갔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조각들. 뭐 그러다가 때때로 전 직장 선후배들이 전화를 걸고는, 회사를 그만둔게 천만 잘한 일이야, 하고 애써 얘길 해 줘서 꿈으로 누렸던 그리움을 종종 깨뜨려 주기도 했다. 더군다나 한 무리의 후배들은 이번 달에 청주로 내려온다고 하고, 다음 달에는 한 선배네 가족이 청주로 내려와서 놀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전 직장의 그리움 아련함이 가득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 수업은 첫 째 주의 우려와 달리 나쁘지 않았다. 학기 초반은 VoD 강의를 권고했고, 중반부터 줌 등을 활용한 비대면 실시간 강의를 권고했다. VoD와 줌은 같은 온라인이지만 제법 차이가 크다. 바다로 따지면 표층부와 심해의 차이랄까? 같은 바다이지만 그 온도는 많이 다르다. 타 대학에서 들리는 소문에는, 적지 않은 교수님들이 앓아 누으셨다는 전언이 돌았다. (조금 무섭게는 스트레스로 돌아가셨다는 괴담도 돌았으니, 8만여 교수님들의 충격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좌충우돌, 단군이래 처음으로 맞이하는 비대면 교육현장. 혼란도 많았지만 '어떤 것'이 급속도로 도래할지도 모르겠다는 기시감이 일었다.
어쨌든 이렇게 한 학기가 마무리 되었다. 여름방학 때는 밀린 사업단 일, 개인적인 연구 그리고 다음 학기에 진행될 교과목에 대한 교안 작성 등 많은 일이 예고되어 있다. 첫 종강, 첫 청주는 이렇게 선도적이고 실험적이고 정신없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