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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종강, 첫 청주 본문

교수의 삶/청주대학교에서

첫 종강, 첫 청주

스티붕이 2022. 9. 27. 10:46

2020년 7월 4일 토요일.

 

어제, 종강했다. 맡고 있던 과목 3개 강좌가 끝났다. 다음 주면 성적 입력하고 학생들 강의평가에 대한 답, 이곳에서는 CQI라고 부르는데, 그걸 온라인으로 입력하면 끝이 난다.

 

한 학기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첫 달은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정신 없었다. 교육부 지침은 매주 다르게 전파되고, 대학들은 개강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비대면 수업을 위한 네트워크와 서버는 증설에 증설을 했고, 신입생들은(물론 나 같은 신임교원도) 초유의 비대면 개강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물론 그들의 선배들이라고 경험해 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첫 달의 전쟁이 지나가고 둘째 달이 되었을 때, 시간이 무척 느리게 흘렀다. 이 말은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이 처음으로 재배치 되는 상황이라, 거의 모든 것을 의식화 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시간의 늘어남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아시다시피 익숙하면 무의식으로 전처리되고, 그렇기 때문에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석달이 지나가 내 삶의 시간은 기존 속도를 찾았고, 넉달이 지날 때 쯤에는 전 직장 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기분으로 종강을 맞았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청주 서쪽의 풍광. 앞에 보이는 낮은 산(해발 약 300미터)은 우암산이다. 그 밑에 대학 교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중앙초등학교과 단설유치원인 율봉유치원이 있어서 그야말로 초품아, 유품아 단지에 거주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답니다.

 

청주라는 도시. 한강과 같이 남북을 가르는 것이 아닌, 세느강 처럼 동서를 가르는 낭만적인 곳. 하지만 나는 이곳 청주 생활이 힘들었다. 아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 도시. 새로운 일의 적응도 쉽지 않고, 방송국 선후배들과 또 다른 결의 교수 사회. 즉 인간관계도 어려웠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것이, 겨울과 봄을 지나, 비로소 7월의 여름을 맞이하여 조금 씩 해빙되는 기분 정도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곳에서 제법 씩씩하게 적응하고 있다. 우려했던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지 그것도 서울 촌놈의 서울살이에서 지방살이이라는 격차는 적지 않은 이질감을 던져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청주라는 '다소' 폐쇄적인 지역 특색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집 생활을 좋아하는 집순이에 고층 뷰를 선호하는 사람이라 이곳 생활도 좋아했다. 게다가 이른바 '디저트의 도시' 답게 먹을 거리 또한 풍부하다는 점도 아내의 취향을 저격했다. 또 아이들은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더라도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뭐 적응하고 안하고가 의미 없는 상황이었다. 막내는 이제 막 24개월을 지나고 있어 서울이나 청주나 힘들기는(부모의 밀착 케어가 필요한 시기) 매 한가지.

 

15년 넘게 다니던 방송국을 그만두고, 충격이 컸나 보다. 이전 직장 꿈을 자주 꿨다. 그래서 상암동이 그리웠고 방송국 사람들이 그리웠다. 전 직장의 사외이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고, 그런 핑계로 상암동엘 종종 갔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조각들. 뭐 그러다가 때때로 전  직장 선후배들이 전화를 걸고는, 회사를 그만둔게 천만 잘한 일이야, 하고 애써 얘길 해 줘서 꿈으로 누렸던 그리움을 종종 깨뜨려 주기도 했다. 더군다나 한 무리의 후배들은 이번 달에 청주로 내려온다고 하고, 다음 달에는 한 선배네 가족이 청주로 내려와서 놀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전 직장의 그리움 아련함이 가득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 수업은 첫 째 주의 우려와 달리 나쁘지 않았다. 학기 초반은 VoD 강의를 권고했고, 중반부터 줌 등을 활용한 비대면 실시간 강의를 권고했다. VoD와 줌은 같은 온라인이지만 제법 차이가 크다. 바다로 따지면 표층부와 심해의 차이랄까? 같은 바다이지만 그 온도는 많이 다르다. 타 대학에서 들리는 소문에는, 적지 않은 교수님들이 앓아 누으셨다는 전언이 돌았다. (조금 무섭게는 스트레스로 돌아가셨다는 괴담도 돌았으니, 8만여 교수님들의 충격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좌충우돌, 단군이래 처음으로 맞이하는 비대면 교육현장. 혼란도 많았지만 '어떤 것'이 급속도로 도래할지도 모르겠다는 기시감이 일었다.

 

어쨌든 이렇게 한 학기가 마무리 되었다. 여름방학 때는 밀린 사업단 일, 개인적인 연구 그리고 다음 학기에 진행될 교과목에 대한 교안 작성 등 많은 일이 예고되어 있다. 첫 종강, 첫 청주는 이렇게 선도적이고 실험적이고 정신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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