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내가 남에게 말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본문
밤이 깊다. 누더기 얼굴이 벌겋다. 속상해 있다. 기운내라는 눈치로, 근황을 물었다. 내켜하지 않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 앉는다. 얼마 있다 누더기는 입을 열었다.
금붕어 세 마리가 있어.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 나머지 둘이 협공해 한 마리를 죽였어. 죽은 고기는 부패해 못을 오염시켰지. 그리고 둘도 죽게됐어.
그런 얘기를 했다. 함축된 의미가 있었다. 어떤 것을 느낀 후, 응분 된 마음을 표출시켜내고 싶은 것이다. 인드라망.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 내가 남에게 말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은 왜 서로를 죽이고 상처내야 하는가? 집중된 자아와 나라는 이기의 발로가, 생각 보다 큰 지배를 행사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위치해야 한다. 집중된 자신의 이기에 대해, 퇴색시키고 눈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사색 시간으로 들어가, 나와 내 안의 관계, 또 타자와의 관계를 그려내야 한다. 원이 그려진다. 별 것 없다. 무상이면서 무상 아닌 어떤 원이다.
누더기는 한 숨을 쉬었다. 눈매가 젖어 있다. 손을 벌려, 십자가 모양을 만들었다. 타인들이 자신 힐난하는 것을 알지만, 당당히 받아들이겠다는 심상이다. 활이 날아들어 비수에 꽂혔다. 칼로 베이고 찔렸다. 알고 있다. 보면서 맞는 예봉과 흘러내리는 선혈. 그러면서도 누더기 난 자신의 육체를, 타자들에게 보여주고 말겠다는 오기다. 용기라기 보단, 무기력에 가깝다. 지친 것이고 반어적인 저항인 셈이다. 할 말 없는 것, 받아들이면서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눈은, 동공 아래 숨어 있다.
누더기는 말했다.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당연한 것이다. 타자는 내 생각이고, 내 생각은 타자의 생각이다. 샘솟는 사고는 우리의 사고고, 그것은 타자 속 나와 내 속 타자 간 사고들의 파편인 것이다. 고착된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한 명, 단지 한 사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쌍한 파편 생각의 무산들인 것이다. 나는 타자고, 타자는 곧 나다.
소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누더기는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며 울고 있다. 이도 저도, 관연된 집단의 소란은, 어떤 형태로건 거대한 생명으로의 하나로서 대자와 타자, 양가를 포섭한 모든 것의 관계를 규정짓는다. 이기, 비난, 쾌 등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타자를 밟는 행위는 또 누구에 대한 것인가? 원 속 무수한 자신의 파생은, 세계 표상으로 드러나 그 속 난장을 형성시킨다. 신의 묘사다.
누더기는 다짐했다. 속을, 떠난다고 말했다. 자리에 일어난 그는,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오래 남아 부패하지 말고, 속히 떠나줘. 내 것이라는 총체의 벌레가 사위에 납작해 있다. 엎드린 그것을, 목도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바라보며 속해 있는 것, 본연 존재의 유무도 모른 채 살아가는 자들과는, 조금 다른 기분을 형성한다. 꿈틀대는 벌레는 작게, 때로 크게 주위에 서성거린다. 밟아 터트릴 수 없다면, 노리고 살아야 한다. 숨 놓치면, 모든 것은 무너진다. ‘나’라는 이기 총체는, 부지불식 내면으로 들어와 전신을 벌레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무서운 집중력이다.
새벽이 됐다. 날씨가 차다. 트렁크를 열고 짐을 셌다. 쓰레기가 다섯 봉지. 공용 휴지통을 찾아, 그것을 쑤셔 넣는다. 행인이 없다. 하늘엔 별도 없다. 휴지통을 뒤척이던 난, 고개를 돌려 누더기를 떠나보냈다. 그와 내가 다른 것은 무엇인가? 내 표정에 누더기는, 다음 번 자신 동네서 커피라도 마시자며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새까만 어둠 속에 빨려가듯 사라졌다. 나는 등을 진채, 꽉 찬 쓰레기통을 움켜 누르고 있다. 다섯 덩이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 위는, 여직은 다른 세계다. 한 덩이를 빼내 어둠 속에 내다 놓았다. 아직은 다르다, 서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