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낙뢰와 계란투척 본문
기자로부터의 전화다. 북한산 낙뢰로 다섯 명이 사망했다는 속보였다. 현장 그림이 없으니, 채울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화였다. 인력이 적은 주말 당직근무에, 정확한 정보 없는 열악한 조건하에서의 의뢰였던 것이다. 속보를 전달했던 기자의 전언이 곧이어 도착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산 암벽 봉우리에 낙뢰가 떨어져, 상부가 절반으로 쪼개지고 그 일부가 등산객들을 덮쳤다는 내용이었다. 재현해야한다는 막막함 보다는, 믿을 수 없다는 사실에 곤란을 느꼈다. 낙뢰가 암벽을 반으로 쪼갰다?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얘기 같았다. 제작을 의뢰했던 취재기자를 귀찮게 하면서 거듭 확인을 종용했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급하니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시뮬레이션 콘티를 짜고 영상을 만들었다. 그래픽은, 폭우가 치는 북한산 머리에 낙뢰가 떨어지면서, 연기와 함께 암석이 둘로 쪼개지는 영상이었다. 완성된 그림은 이어지는 뉴스의 전화연결 그리고 단신 등에 연이어 사용됐다. 잘 제작됐다는 안도감보다는,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없는 그림을 사실로 재현해야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보니, 시청자들을 기만으로 속일 수 있다는 부담감이 부지불식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4년 전 일이다.
비교적 최근은 이용훈 대법원장 계란투척 사건이 있었다. 이 건은, 대법원장의 출근길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육교 위에서 이 대법원장의 관용차량을 향해 계란을 투척시킨 사건이었다. 현장 그림은 없었다. 다급했던 사회부 기자는, 어떤 식으로든 그림을 넣어야 한다며 곤란한 표정으로 제작을 요청했다. 속성으로 제작해야하는 경우는 하루 이상 소요되는 3D시뮬레이션보단 사건삽화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일련의 정황을 고려한 끝에, 두 시간 가량 시간을 확보해 몇 컷의 삽화로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 방영할 때가 되자 담당 취재기자가 미안한 기색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영상이 완비됐으니, 삽화 애니메이션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투척된 계란, 차량에 뭍은 흔적 등으로 현장성을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빠진다. 그렇지만 보다 정확한 화면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제작의 수고를 당연히 상쇄한다.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낙뢰사건의 경우다. 북한산 낙뢰사건의 초기 보도는 명백한 오보였다. 낙뢰는 암벽에 부딪히지도 않았고 바위를 쪼개지도 않았다. 정교하게 추정된 정보에 의하면, 낙뢰는 등산객의 철제용품과 스틱 등에 직접적으로 타격 돼 사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송출된 뉴스는 시청자들과 고인들의 사망에 적지 않은 불신과 불쾌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방송된 뉴스는 온라인에도 등재 돼 있어, 속성상 원천적인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성급한 속보경쟁이 낳은 부끄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방송은 공론화 된 장(public area)이다. 그것은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허가된 특권이기도 하다. 방송에서의 영상은 다른 것에 비해 보다 직접적인 화술을 구사한다. 공론 장에서 송출된 영상들은 그 스스로가 권력을 지니고 있어, 신뢰나 사실성 등을 스스로에게 전가시킨다. 따라서 보다 엄격하고 엄중한 사실 확인이 거듭 요구되는 지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뉴스그래픽은 촬영이 재현할 수 없는 것을 화려하게 구현시킨다. 또 남발되는 정보를 일목요연한 정보그래픽 형태로 표현해 시청자들에게 이해의 도움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취재경쟁 이후에 남는 것은 예쁜 포장, 먹기 좋은 떡을 생산해 내는 기술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날로 화려해지고 자극적으로 변모하는 방송국 간 뉴스그래픽의 경쟁구도는, 그 속보성과 더불어 내실을 지극히 연성화 시킬 우려가 크다. 이 시기, 엄중한 사실관계의 확인은 부여받은 공론 장으로서의 보도 틀 내에서 결코 게을리 할 수 없는 부분이 되고 있다. ‘팩트’는 취재 일선만 머물 수 없다. 그것은 뉴스그래픽과 같은 제작 일선에도 들어와, 예의 시퍼런 예봉을 함께 세워두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 미디어오늘 칼럼 기고문 (미디어현장, 2011년 1월 넷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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