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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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Zero-Hachi reports

제로하치와 직관

스티붕이 2012. 7. 9. 00:11


1장. 직관


1. 이것은 운명인가 보다. 짐을 쌌다. 자전거를 챙겼다. 도쿄로 떠났다.


2. 당도한 당일, 비는 추적추적, 미술관은 냉담했다. 한 마디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3. 모리미술관에서 바라보는 도쿄타워는 아름다웠다. 힘을 내기로 했다.


4. 갤러리가 운집한 긴자, 역시나 냉담한 반응. 그렇지만 직관을 믿어보기로 했다.


5. 서점으로 보이는 곳에 갤러리의 간판이, 지나치려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입구를 두드렸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내면에서는 이곳이 전시를 할 곳이라는 믿음을 뿜어내고 있는 것일까?


6. 얼마동안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이곳은 갤러리가 맞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갤러리 박람회를 위해 휴관하고 있다는 것. 되돌아가려하자 갤러리 오너가 붙잡는다. 잠깐만요, 건물 8층에 당신과 맞는 갤러리가 있습니다.


7. 일본의 갤러리는 특색을 갖추고 있다. 내가 방문했던 Span Art Gallery는 그로테스크하고 섹스어필한 작품만을 전시하는데, 그 외의 것은 대체로 받아주지 않는다. 긴자의 갤러리 대부분에서 거절을 당했던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도 있겠지만, 먼저는 콘셉트의 미스매칭이 크다.


8. 8층은 또 다른 갤러리로 주로 설치나 비디오와 같은 동시대 예술을 전시한다. 비디오아트나 설치미술 등은 긴자에서 선호되지 않는 것으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야하는 갤러리의 입장에서는 판매가 힘든 비디오나 설치 등은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물론 그러한 사정은 국내서도 마찬가지다.


9. 미야모토 씨의 첫 인상은 공장장 같은 느낌. 그는 작업복 차림을 한 채 사다리 위에 올라 벽면을 수선하고 있었다. 수수한 차림의 그는 이 건물의 주인 가운데 한 명이면서 7층과 8층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오너이기도 했다. 미야모토 씨는 반갑게 맞으며 짧은 영어로 갤러리 이곳저곳을 설명한다. 1층 갤러리 오너인 야마다 씨 역시 미야모토 씨의 설명에 코멘트를 덧붙인다.


10. 오프닝 날짜를 잡고 전시의 종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모든 일은 때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법. 흐름에 몸을 맡기면 이후는 그러한 섭리가 모든 것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주적주적 비 내리는 긴자 거리. 들뜬 마음으로 마지막 날의 도쿄를 만끽했다. 제로하치와의 인연은 그런 식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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