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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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록] 꿈에서 본 '천국'은 마치 '사무실' 같았다

스티붕이 2020. 1. 14. 23:49

ⓒ Jungho Suh

현실의 습관이 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만일 꿈을 현실의 연장이라고 본다면, 현실의 습관은 꿈속에서도 동일하게 작동을 할까?

 

난 그렇다고 본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경이로운 장면을 봤다고 치자. 나는 당장 카메라를 챙겨들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이로운 장면을 기록하려는 평소 습관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그런 습관은 꿈속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점인데, 오늘 꾼 꿈이 그랬다.

 

누군가 외쳤다. “저쪽에 천국이 보여요!” 나는 카메라 본체를 챙겨들고, 70-200미리 줌렌즈를 본체에 장착하면서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우현 쪽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그러면서 ‘천국을 기록해야해. 조금 전에는 구름 틈새로 쏟아지던 기막힌 폭우장면을 놓치고 말았잖아? 이번에는 기필코 놓치지 않을 거야.’ 하고 일전의 회환을 보상하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나는 비행기를 닮은 배 위에 떠 있었다. 그걸 배라고 불러야할지 비행기라고 불러야할지는 알 수 없었다. 배라고 하기에는 하늘에 떠 있고, 비행기라고 하기에는 함교와 함미 등이 있는 선박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의 규모는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번잡함, 함미 쪽에 정차되어 있던 차량의 수 등을 감안해 보면, 초계함 정도의 크기는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함미 우현부에 설치되어 있는 라이프라인 앞에 선 채, 이제 막 지나가고 있는 ‘천국’이라는 배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천국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사무실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무실? 그렇다. 우리가 아는 사무실 말이다. 천국이 사무실을 닮았다니, 이거 참 난감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게 중 가장 사무실다운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모양은, 금색 안경테를 낀 한 중국인이(꿈에선 중국인이라고 판단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 화면을 내려다보면서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 장면에서였다. 나는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삼각대, 삼각대를 놓고 저 사람을 흔들리지 않게 찍어야 해.’ 하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부산떨며 생각했다.

 

나는 함미 쪽에 정차 되어 있는 내 차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트렁크 문을 열고 검정색 멘프로토 경량 삼각대 한 질 꺼내들며, ‘좋아. 이거면 되겠어. 무거운 건 설치하기가 번거로워 시간이 많이 걸려.’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카메라 본체의 퀵 슈를 경량 삼각대 쪽 헤드에 재빨리 끼워 넣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고고하게 지나가고 있는 천국이라는 배는, 절반 가까이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천국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 그것을 양질의 영상으로 담아내야만 한다. 나는 우현까지 뛰어가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해, 함미 쪽에 머물면서 삼각대를 정박시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웬걸, 트랩에 걸렸다. 삼각대의 다리는 마치 문어발처럼 축 늘어져, 도무지 세워질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겨우 고정을 했는가 싶으면, 때론 다리가 제멋대로 늘어나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어떤 사람이 소리쳤다. “당신만 바쁜 게 아냐! 나도 저걸 구경하고 싶다고, 에잇!” 그래, 당신에게도 천국을 볼 권리가 있다. 진땀이 났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던 경량 삼각대가, 필요의 순간에는 재 기능을 상실해 버린 것 같아 질력이 나기까지 했다. ‘왜 이러지? 정말 왜 이러지?’ 나는 삼각대를 연거푸 거치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면서, 천국의 장면을 잃을까 애를 태우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확’ 하고 일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국의 후미에서는, 사람보다 몇 십 배는 커 보이는 털북숭이 괴물 하나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털북숭이 괴물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 쪽으로 ‘휙’ 하고 달려들었다. 놀라우면서도 경이로웠다. ‘저 큰 몸집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중을 날아오다니?’ 나는 돌연 거치가 완료된 경량 삼각대를 세워놓고는, 털북숭이 괴물을 향해 포커스를 맞추려했다. 털북숭이 괴물은 카메라 앞에 거인처럼 서 있었다.

 

“너, 그거 미사일이지.” 괴물이 말했다. 그는 내가 세워둔 삼각대와 대포렌즈 조합의 카메라 형태가, 마치 미스트랄과 같은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과 닮았다고 생각을 했는지,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저를 잡아먹을 사냥꾼이라도 된 냥. 내가 대답했다. “아냐, 이건 단순히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일 뿐이야.” 털북숭이 괴물은 내 말에, “나는 300만 년 쯤 전에, 인간 2명을 죽였었지. 너와 같은 인간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숨쉬기보다 쉬운 일이라고. 그런데 내가 너를 내려다보면서 주저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바로 냄새 때문이지.” 하고 씩씩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냄새?” 내가 물었다. “그래. 바로 인간의 더러운 냄새 말이야. 나는 첫 번째 인간을 산채로 물어뜯어 죽였지. 그리고 곧바로 하수구에 내던졌어. 그런데 나는 이내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지. 인간사채는 꼭 바깥에 버리라는 말씀. 인간사채 냄새는 지독하게 고약했고, 또 구역질이 날만큼 역겨웠지. 그 더러운 냄새는, 우리 집 하수구를 통해 1만 년이라는 세월동안 실내 구석구석에 퍼져 나를 괴롭혔어.” 털북숭이 괴물이 말했다.

 

“두 번째는 왜 죽였지?” 내가 물었다. “신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야.” 괴물이 대답했다. 내가 물었다. “네가 신이야?” 괴물이 대답했다. “너는 보이는 것만 믿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자는 복될 것이다. 네 눈에 비친 나는, 네 정신의 반영이야. 내가 네 눈에 형편없는 괴물로 바라보이는 건, 너의 인식주체가 대상을 그렇게 보이도록 결정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야.” 나는 괴물을 채근하듯, “알았으니까 계속해봐.” 하고 말했다. 괴물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인간을 죽인 건 내 실수였어. 첫 번째 인간은 남자였지만, 두 번째 인간은 여자였지. 나는 그녀를 사랑했어. 작고 귀여운 인형 같았거든. 그녀도 나를 사랑해 주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지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어. 이유는 간단했지.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반면 나는 늙지 않았어. 인간과 우리의 생체시계는 서로 다르기 마련이거든. 그녀는 늙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 했고, 날 만나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러했어. 나는 에코정령에게 부탁했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주술을 부려달라고.”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주술?” 내가 물었다. 괴물이 대답했다. “그래. 나르시스가 걸렸던 바로 그 주문. 그건 내 실수였어. 에코정령의 주술은, 타자 화 된 자신의 반영에 사로잡힌 채,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주문이었다는 걸 몰랐던 거야. 나는 그녀를 내 침대 맡에 세워둔 채, 또 다시 1만 년 동안의 악취를 견뎌야만 했지.”

 

나는 괴물에게, “조그만 스푼에도 태양은 들어가 있기 마련이야. 크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 나는 널 죽이거나 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나도 네가 날 죽일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게.” 하고 그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듯 말을 마쳤다.

 

털북숭이 괴물은 사라졌다. 나를 죽이면, 또 1만 년의 인간 냄새를 견뎌야만 했을 것이다. 천국은 지나갔다. 내가 탄 배는, 어느새 복엽기로 변해 있어서는, 중국 쪽을 향해 운항하고 있었다. 나는 복엽기 뒷좌석에 눌러 붙은 채, 앞좌석에 앉은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건넨 도시락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바깥바람은 식사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절묘하게도 고요했다.

 

꿈이란 기묘하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현실의 습관은 꿈에 무진장 반영되기는 하겠지만, 꿈에서의 습관은 현실에 반영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두 가지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을 펼치며, 양송이 스프 한 잔을 또한 게걸스럽게 닦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스프 위에 뜬 빵은 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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