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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지루함을 '올바르게' 탈피하는 방법

스티붕이 2014. 11. 22. 19:28


Photo credit: lassedesignen via Shutterstock


<문제제기>

“뉴스의 지루함을 '올바르게' 탈피하는 방법”


<배경>

1. 인간은 편하게 있고 싶다.

2. 그렇지만 지루하게 있기는 싫다.

3. 따라서 편하게 있으면서도 지루함을 탈피하고 싶어 한다.(지루함의 역설)


<접근>

1. 지루함을 느끼는 대표적인 이유. 예측 가능함.

2. 지루함을 탈피하는 대표적인 방법. 예측 불가능함. 즉 재해석 시키는 것이다.

3. 재해석의 예 두 가지. 첫 번째 방법, 시각적 방법이 있다. 시각적 방법은 이미지 비틀기, 텍스트 비틀기, 몸 비틀기가 있다. 두 번째 방법, 청각적 방법이 있다. 청각적 방법은 통사적 비틀기가 있다. 즉 “아, 지루해. 뭔가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에 대한 메타포는, 시청각 비틀기를 지향해 달라는 주문이다.

4. 해석학의 대가인 가다머(Gadamer, Hans—Georg)는, 지루함에 대하여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공허해지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5. 인식주체인 인간은 대상을 끊임없이 해석하려 한다. 즉 시각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인간의 해석대상으로 존재해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측 가능한 해석 범위에 들어온다면, 인간은 ‘의식적’ 해석을 아끼고 ‘무의식적’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다. ※ 가령 쉼 없이 지나다니는 동네 앞 도로에, 철물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공구가 필요해지는 시점(의식)이 아니면 기억을 할 수 없다. 무의식이 처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 따라서 지루함의 탈피는 무의식적 해석과 의식적 재해석의 ‘놀이’로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의 무의식적 규정 속에서 의식적 행위를 하는 동물과 구분되는 차이점이다. 이에 대해 하위징아는 놀이하는 인간으로서 호모루덴스를 주장했다. (※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가다머는 하위징아의 개념 위에 ‘놀이는 예술’이라는 것을 덧붙였다.)

7. 무의식적-의식적 놀이의 예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축제. 축제는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새롭게 해석하는 행위다. 두 번째, 음악. 음악은 작성된 악보 위에서 새롭게 연주하는 행위다. 세 번째, 그림. 그림은 정해진 기법 내에서 새롭게 그리는 행위다. 네 번째, 스포츠. 스포츠는 정해진 룰 속에서 새롭게 운동하는 행위다.

8. 그렇다면 전통(무의식-해석)은 어떻게 전이(의식-재해석)되는가?

9. 가다머는, 전통이란 해석 대상이 보존(konserveierung)되는 것이 아니라 전이(ueberstrabgung)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전이는 옛것을 새롭게 말하고 전치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전통의 해석 대상이 새롭게 전이됨으로서 현재화 되어지는 재현행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0. 가다머는 전통과 현재의 화해(단, 생 세계 위에서)를 추구했다.


<결론>

1. 지루한 것을 탈피하고 싶어 하는 오늘날, 뉴스는 어떻게 지루함을 극복해야 하는가?

2. 방법은 간단하다. 해석 대상을 재해석 시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첫 번째 무의식 대상(전통)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본질에 대한 이해), 두 번째 의식적 대상(새로움)으로 전이(재해석-놀이)시키는 것이다.

3. 따라서 '시청각 비틀기'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뉴스의 '본질에 대한 탐구'도 동시에 성장해야만 하는 것이다.(가다머의 해석을 기반으로 한 올바른 재해석의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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