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봄바람 본문
Sound 0047/ 1984
동산에 앉았다. 올해 봄은 유별나다. 꽃이 피었던가 싶더니, 봄 싹 꽃 등이 주변에 지천이다. 기분은 뭐 그렇다 해도, 여전히 겨울 같은 마음. 얼었던 신년이 왔던가 했더니만, 화려한 춘 사월 봄은, 우리 곁에 성큼 와 있는 것이었다. 꿀벌 한 쌍이 벚꽃에 앉았다. 침착한 걸음을 걷다,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스스로 제도가 돼야지, 하고 입을 연다. 나는 광포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벚꽃을 꺾고 꿀벌을 내 쫓는다.
유난히 느낄 수 없던 이 봄은, 나이가 들수록 미약해져버리는 성탄절 감흥과 닮아, 어쩐지 슬프고 또 침울했다. 심경이 바쁘면 정신도 황폐해지니, 반응이 느려, 기어이는 당찬 동공 외엔 어떤 것도 시선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충 고개를 들면, 나는 어떤 벽돌에 걸터앉아, 도심 발자국을 바라보고 있다. 번잡한, 그리고 새까만 그림자는 보도를 바쁘게 산란 거린다.
이정도 기분은 회색이다. 나비는 날 것 같지도 않다. 어디 전신주 밑을 서성거리다, 때 묻은 나방이 될 것만 같다. 침울한 군중은, 장소를 잡아 술잔을 기울이려, 백열등 밑을 비집고 엉덩이를 들이민다. 태양 잃은 거리엔, 희망이 없다. 헌데 향연이라니, 언덕의 둔덕은 봄과 같지 않은 것이다.
둔감한 자연엔 계절의 섭리가 흐른다. 지루한 창생의 원리가 만물에 깃들고, 싹이 돋는다든가 움츠린 기지개를 피곤 한다. 스산한 심정엔 폭설이 내리는데, 창문 열면 닿을 것 같은 봄꽃들. 떨어진 목련엔 치기어린 아이가 밟아 서서는, 새빨간 잇몸을 드러내 웃고 있다. 음울함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냥, 연신 그렇게 웃고만 있는 것이다. 동산 어귀에 앉는다. 꽃이 피는가 싶더니만, 벌써 봄꽃은 주변에 지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