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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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Sound of city

노랗던 눈물

스티붕이 2012. 7. 20. 16:45

Sound 0041/ 1984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구걸하는 흐트러진 걸인도, 소주를 마시며 망연히 앉아있는 더러운 광인도, 그들을 스치는 부지런한 샐러리맨들, 젊은 연인의 달콤한 발걸음도,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무색해진다.


어떤 것이 한스러워, 비참한 표정으로 대낮 눈물을 훔쳐내는가? 먼지가 뿜어나는 지하철 환풍구 덮개엔, 통렬히 울고 있는 얼음 걸인의 광기에, 보도까지 노랗게 물들었다. 하나의 객체가 고난을 받는다거나, 해서 불운한 존재다 단정 지을 순 없을지라도, 그를 스치는 무수한 발걸음은, 비참한 심경으로 혀를 차며 자신 삶을 일부분 투영해준다.


미안하지만, 나도 비참하다네. 눈 속을 찌르던 고통, 비난할 수 없던 도회지인의 단호함. 어느 곳에나 걸인과 정상인의 모호한 범주는 규정지을 수 없다. 동정심이 이는 순간, 그 찰나에 나는 그가 되고 그는 내가 되는 것이다. 일시적 통과가 끝나면, 그러나 구걸의 초로며 더러운 광인 등은, 이내 기억에서 멀어지고, 마음 속 깊은 무덤엔, 그들을 향한 조야한 분류가 송장처럼 매장된다.


보도 위 행인은 불행하다. 사라진 동감의 자리엔, 이질적 속리와 도도한 선민의식이 세를 올리기 시작한다. 실족 된 인간으로서의 본연은, 명백히 하나로, 사랑의 상실 또는 떠나간 관심의 아픔 등과 함께, 자신들 예봉에 응어리 둬, 그들의 영혼에 생체기 낸다.


안타까운 것은 원형 속 편견이다. 다름에 대한 안도와 이원적 구분들, 그것이 버물린 감정의 상실 등은, 그렇게 살아오게 만들고, 또 살아가게 채근한 도회지인의 기형적 몰골에 원형을 뒀다. 누가 누구를 위해 즉자를 투영했던 것이며, 누가 누구에 대해 긍휼을 베풀게 지시했던 것인가. 구걸하는 행위와 광기의 눈매 속에서, 절단 된 획책의 단언을 행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양자가 실족한 사랑의 상실에서는, 본래적 상흔에도 불구하고 도도한 턱 선, 광인과 즉자에 대한 무거운 고성만 충실히 쌓아가고 있던 것이다. 벽돌을 올리고, 심장에 새겨 둔 선민의 주홍글씨에, 그들은 처참히 구분 돼 버린다. 더 이상 숨을 곳 없는 하류에 대한 동정적 발가벗음은, 편견이라는 실로 안락한 군무의 환상에, 인간 상하를 분류해 낸다. 그리고 가면을 벗는다. 변극의 위장술처럼, 또 가면.


무더운 여름이 지났다. 노랗던 눈물은, 이윽고 은행잎이 됐다. 겨울 눈꽃은 그즈음, 사방을 하얗게 뒤엎었다. 눈 위엔, 내일의 걸인, 당신의 즉자가 외롭게 얼어 있었다. 뜨거운 겨울 전철은 보도 아래를 통과하고 있었고, 먼지 일던 바람은 열기를 동반해, 얼었던 환풍구 위 걸인의 귓전을 녹이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한 올 천천히 움직였고, 지나던 도심 군무 일부는, 저 자가 사람이었다, 자각하고는 설원 속을 재빨리 걸어갔다.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눈꽃은 북극성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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