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엔 꽃이 피고 너머엔 꿈이 있다
선생의 체벌 본문
Sound 0029/ 1984
없었다. 사전을 들고 뒤척여 봐도, 글자 외엔 없었다. ‘나’는 무엇일까? 나의 ‘사랑’이란 또 무엇일까? 내 사랑의 ‘자유’란 그래서 무엇일까? 없었다.
선생은 체벌했다. 정답은 ‘없다’는 것이 아니라했다. 암기해야했지만, ‘외우지 않아 벌 받아야 해’하고 나무랐다. 어떤 의미로 온당했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손바닥을 되도록 편편하게 벌리고 선생을 올려다봤다. 금색 안경이 빛났다. 온화한 위엄이, 황금빛으로 뜨겁게 발산되는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 한 땀 한 땀에는, 그 속에 품은 천사의 분노가, 빙벽처럼 차갑게 솟구쳐 있는 것만 같았다. 양손 용기백배가 가득 차 있어도, 어쩐지 권위 앞에서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본성이 틀렸다. 어비어미 없이, 가정교육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넌 숙제도 하지 않았고 예복습도 하지 않았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줬던 것이다. 귀 기울이지 않았어. 외우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기생충 같은 빈민의 공통된 습성이야. 그들의 자식이 사회에 나가, 그릇된 저항으로 탈법과 범법 등을 저지르곤 하지 않니. 벗어나고 싶어? 그렇담 내 말을 듣고 신봉하란 말이야. 그리고 외워, 이 기생충 같은 멍청아.
무서웠다.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의 비난이 끝나고, 서둘러 손바닥을 내려치길 마음속에 채근했다. 체벌이 종결되고, 성급히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알지만, 말할 수 없는 정답의 근원, 그 본질을, 나는 끝까지 호언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세계에 있어 내 존재의미, 내게 있어 세계의 존재의미, 그 속에서의 사랑과 자유 등의 정의는, 내게 있어 어떤 식으로 규명돼 갈까? 명약관화 없이는, 명쾌한 정답을 강요하는 권위의 카르텔 앞에, 맞설 수가 없었다. 저항할 수 없었다.
제도권 교육의 일방적 강요는 단단하고 거칠었다. 그 앞에선 멍청한 빈민은, 에둘러 소리치는 그릇된 발악만 남겨지고, 비난과 타협에 갈등해야했다. 공적 권력의 체벌이나 판결 등은, 그들의 깃발을 수탈해갔다.
반복 된 침묵은 고통이 된다. 단어의 의미는 사전에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 진정한 의미는, 내 삶에 있다. 비단 그것이 사전적 의미로 규정되어왔어도, 한 명의 사람에 있어 진정한 의미로 공리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똑같은 빨강도, 50억 인구에겐 50억 개의 빨강으로 의미되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렇게 열두 번을 내리쳤다. 천사의 비웃음이, 교실에 울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