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Sound of city

자유인의 구멍

스티붕이 2012. 7. 19. 18:14

 Sound 0010/ 1984  

기차에 오르기 전, 나는 전장의 중앙에 서 있었다. 사면은 초가였다. 어느 면으로도 후퇴는 불가능해 보였다. 상사Z가 지천을 가로 막는다. 그가 내 게으름과 업무 무능을 꼬리 잡아 면전 위로 호통 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지탄에 뜨악하여, 옹졸하게 움츠리는 척 했다.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연기. 그것은 미덕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에 순응하는 직장관계의 고리로. 그런 암묵적 코드를 떠올리면, 상사Z의 아우라는 발목을 붙잡는다. 지탄의 진정성이 절반만 가지고 있더라도, 나로선 세습된 사내의 암묵적 코드에 지배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정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사람 근원의 인격은 그 방축을 허물고 만다. 어느 지점에서, 직장업무가 개인 실존의 바로미터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지침의 원동력은 개인의 선혈로 구성된다. 회사는 개인을 살해하고 지축은 그 뼈를 적출하여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직장의 개인은 가죽만 남긴다.

그것은 반항 일로를 질주했던 자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가 임금노예 관계에 동의한 직장이라는 전장에 뛰어든다면, 세습된 규율에 순응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비난과 힐책, 인격 모독 및 정치적 감시 등이 그를 교정하여, 온순한 사회인으로 개비시켜나갈 것이다. 젊은 시절의 반항은 망각아래 침잠하고, 양손은 자본주의로 전향한다. 기업이 선사했던 재화가 셈 솟아, 양손은 소비감응을 자극받는다. 두 손은 개펄 위 게가 된다.

나는 상사Z의 꾸지람을 듣는 와중, 구금된 자유인과 직장의 상명하복에 대한 구조적 모순들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러는 중, Z의 지탄과 꾸중은 차츰 인격 모독으로 변질되고, 그의 바로미터는 실존 협박으로 향한다. 당신은 개돼지만도 못한 자라는 것은 결국 비난으로 되돌아와, 인격 방축 여기저기에 구멍을 꿇어내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