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Fugitive essays

소시민의 빚

스티붕이 2012. 5. 30. 14:32

8차 파업 마무리 집회가 끝나고 만두선배가 채근한다. 인사동 명계남 손글씨 전시가 열린다. 가보자. 갤러리에 도착하니, 아차 노통 3주기구나, 하는 것이 떠오른다. 이전 충격과 슬픔, 분노 등은 3년 새 고스란히 사라졌구나 생각했다. 노통 3주기인 것도,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퇴색 돼 있었다. 


명계남 씨 작품은 온통 노통에 관한 비통, 그리움과 고인 언변 등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왠지 숙연해졌다. 또, 익숙한 일상에 잊고 살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까지 느껴졌다. 2006년 연설이었다고 설명하는 작품 아래 발길이 멈췄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노통은 자살을 택했고, 깨어있는 시민으로부터도 떠났다. 큰 메시지를 남겼다. 몸을 던지며, 다중이 각성하기를 바랐다. 한 명의 자살은 수십 명으로부터의 타살이며, 한 번의 자살은 수십 번 시도 중 하나다. 그는 억겹의 타살과 자살의 시도로부터 부엉이 바위의 피가 됐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혼란으로 빠져들던 2009년의 5월이 떠오르며, 대한문 앞을 서성이던 그 해 봄이 떠올랐다. 경찰이 친 폴리스 라인은 시민들 발에 밟혀 이곳저곳 끊어진 채로 산산 돼 있었다. 몇 올 둘둘 말아 가방에 주억거려 챙겼고, 그것은 2009년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노통이 말하고 싶었던 키워드는 짐작컨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법살인, 다른 하나는 깨어있는 시민이다. 그는 봉하의 혼령이 돼, 그 두 가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명계남 씨 작품은 이전의 봄을 홀홀히 상기시켰다.


서거, 해직자, 사찰과 탄압. 태어나서 처음 경찰조사도 받아보고, 검찰로부터 기소유예라는 황당한 처분까지 받아봤다. 부조리에 대한 저항은 공권력 프레임에 갇혀 좌편향이라는 주홍글씨로 여기저기 새겨졌다. 항변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도 다니고 작품도 생산했다. 그런데 남는 것은 멍청한 망각뿐이다. 3주기는 뭐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냉담하게 잊고 있다. 현실의 안주는 블랙홀처럼 많은 것을 무디게 만들었고, 나는 돈벌이 샐러리맨으로서 영혼 없는 인간이 되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성된 글씨는 강물이 바다 향한다며 의식을 종용했다. 명계남 씨의 조야한 작품은 파업으로 반푼 된 월급에도 불구하고 그 값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밀려드는 카드 값, 채무를 생각하면 생활에 반하는 행위다. 그런데 왜 그럴까, 가슴이 따뜻하다. 생기롭다. 노통은 죽어서도 소시민 의식을 각성시키게 만드는 묘령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명계남 씨 글씨 속에, 그리고 동료 선후배들의 얼굴 속에 그 의식은 조금씩 묻어나고 있었나 보다 생각됐다. 나는 빚을 지고 있다. 돈이 아닌 의식의 빚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