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오랜만의 전화다.
세 달 만에 친구와 나눈 대화는, 근황에 관한 것이 전부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어떻게 지내며 올해를 살아갈 계획은 어떤 것인가 정도다. 건조한 대화가 몇 마디, 꽤나 지루하게 이어졌다.
전화가 끝날 때 쯤, 채증으로 막히던 종로는 교통이 풀렸고, 라디오에서는 주영훈으로 여겨지는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오의 햇살은 꽤나 누워있어, 머리 언저리를 벌써부터 눈부시게 만들고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등병의 편지.
스무 살 초반 무렵, 나는 친구와 진해가는 기차에 올라있었다. 어머니가 싸 주셨던 볶음밥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객차와 창밖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는, 훈련소 앞 여느 허름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는, 맛없는 고기를 구워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내일쯤이면 이 맛도 그리울 테니 많이 먹어두시라 농을 던졌다.
화창했던 군항제는 막을 내렸다. 뜨거운 햇살은 아스팔트에 녹아서는, 훈련병들의 고통을 예견케 해 주었다. 김광석의 노래가 끝날 때 쯤, 빠져들고 있던 과거의 회상은, 그 부분에서 거칠게 멈췄다. 현실로 되돌아온 나는, 경적을 울리는 차량에 인상을 찌푸리며, 룸 밀러를 노려보고 있었다. 스무 살의 우리는 저곳에 서서는, 어색한 태도로 떠나는 차량을 망연히 바라다본다. 껍질을 깨고 나온 지금의 존재는, 부러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당신들 것. 그렇지만 친구는 세월을 먹고, 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내 얼굴을 관찰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있다. 서로가 걷는 방향도 조금씩 달라, 머지않아 그가 나와 교감할 수 있는 부위는 지금보다 줄어있을 것이다. 친구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단지 미래에 관한 언어들. 명료했던 지난 시기를 반추할 틈도 없이, 지금의 우리는 누군가 보채는 조급함의 병으로, 서로를 조금씩 잊어갈지 모른다. 하루를 멀다며 만났었던 우리도, 계절들을 바꾸어 일부분씩 지워내고 있다. 오랜만의 전화는 의미 없는 허위가 근황의 옷을 입고, 과거를 대신하는 행세로 노련함을 잰 체한다. 그 가운데 마주앉은 친구와 나는, 달리는 차량을 움직이며 서로의 눈빛을 피하고 있다. 경적이 울리고, 때로 추월을 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보다 다급했던 것이다. 나는 없고, 그래서 친구는 없다.
그 해의 진해는 무척이나 더웠다, 그런 기억이 눈가에 남아 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