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Fugitive essays

낙엽, 발자국

스티붕이 2011. 10. 17. 12:32

어느새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뒷산 연희자락을 오르니 코가 맑다. 가을이 됐다. 행인들은 낙엽 밝은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강아지 몇 마리는 그것 위를 지나가며 사람과 같은 조야한 자박 소리를 낸다. 귀엽다. 소음이 재빨리 들리고 허공으로 사그라진다. 저만큼 떠 있는 어제의 입새는, 내일에 이르러 몸체를 떨어트려 지상으로 낙화를 시도할 것이다. 사방은 가을의 향연으로 난장을 치르는 중이다. 아름다우면서도 한 편 스산한 분위기다.

이맘이면, 이때의 기온 그리고 환경 등이 잔기를 발현시킨다. 꽃을 떨어트리거나 입새를 물들이는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엔그램(engram)의 작용이라 일컫는다. 엔그램이란, 외부의 환경에 의해 신체에 생기는 잔흔(residium) 또는 생체기를 의미한다.년 중 어느 시기라도, 때가 되면 동일한 흔적을 반복시키는 그것은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그렇게 설계되어 왔고, 그렇게 수행되어야만 할 필연을 지니고 발생한 자연-존재들인 것이다.

나무의 개화나 낙화 등이 사람과 닮았다면, 우리는 주름을 먹고 잔기의 검버섯을 신체 어딘가에 인상(imprint)시켜나가는 생명의 종들과 그 괘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쩐 일인지 가을이 되어 마음이 공허했다면, 의식과 관연 없었을 지금의 몸-주체는 이때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반복의 단조로움, 지루함 그러면서도 필연의 따뜻한 테두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단편적인 자연의 그것과 완벽하게 닮았다고 볼 수 없는 양태가 있다. 바로 낙화의 역류다. 이는 비-본래적 엔그램의 작용이라 명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본래적 본류의 흐름을 거스르는 본연적 당위 즉 비-본래적 본류로서의 본래본류에 대한 역방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주체는 엔그램의 잔기를 필연 반복시키지만, 의식-주체는 그것에 반해 시간을 거역하는 분리 아닌 접합의 시도를 하기도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것은 트리와 같은 리니어의 종적 구조가 아닌 루트와 같은 리좀(rhizome)의 횡적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 자연의 시공간 비-가역이 아닌 가역과 자연시간에 대한 역행이나 공간의 변형 등으로 주형 되는 인간의 독특한 ‘탁월함(arete)’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유클리드 태블릿의 사람은 때로 비-유클리드 태블릿으로 이동해 창발하거나 직관의 상상을 일으켜 내기도 한다. 그것은 엔그램의 잔기만 인상시키는 자연계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차연(difference)해 내며, 의미적으로 형이상학계 위에서 자연계의 그것을 관찰 목도하는 주체자로서의 당위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목도의 주체가 보편적 다중까지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외시(denotation) ‘종’으로서의 인간은 내시(connotation) ‘결’로서의 인간과 변이전후(자각 이후)가 다소 다르다. 집합으로서의 다중은 탈-다중한 각성의 인간, 그리고 시공 본류를 거역하려했던 일단의 창조자들과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낙화 무리를 거대한 다중의 흐름으로 바라본다면, 소수의 솟구치는 낙엽은 그 가운데 일부로 공기에 비상하려는 행위다. 이러한 역행은 낯설(uncanny-eidos)며 때로 광기의 모양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각성은 다중으로의 우리를 때로 자각해내고, 탁월함의 교사로 발전해 동굴 속 불빛이 실은 잔광의 조악이라고 폭로해 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열린 공간의 우리는 실은 닫힌 공간에 속한 채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양손이 결박당한 채 동굴 내에서 그림자들의 연극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불빛은 어디 있는 것인가? 찬연한 태양의 광연은 과연 어디에 들이차고 있다는 말인가? 좁고 습하며, 어두운 습지의 협곡을 지나 돌덩이를 파헤쳤을 때, 그 빛은 손가락만한 구멍을 통해 역류의 자각들에게 그 새침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동굴 밖 다른 차원의 세계로 그들의 눈을 인도해 줄 것이다. 그 때가 된다면, 호모 에티쿠스의 인류는 타자가 곧 대자며 대자가 곧 타자일 인드라망의 조개 또는 미역 등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낙엽다운(dike) 낙엽 하나를 들었다. 되돌아오는 주차장에 달력 한질이 걸려 있어, 스프링 사이로 예쁜 그것을 꽂아두었다. 날이, 잎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차량은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