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Fugitive essays
지진과 전시
스티붕이
2011. 3. 21. 10:44
한 선배가 묻는다. "정호 씨 일본 전시는 어떻게 돼가요?"
선배는 일본 대지진 난국에, 도쿄에서의 전시는 왠 것이냐며 우회적으로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왠만해선 연기하라고 간접적으로 채근을 하는 것이다. 내심 반발이 들어, "그래도 약속잡은 일정이니 실행은 해야죠" 하고 보기좋게 웃어넘긴다. 그렇지만 그런 질문, 걱정 등을 오랫동안 듣게되면 왠지 자기검증의 굴레 속에 빠져들어, 나 스스로도 그들의 걱정을 마냥 웃어 넘길 방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도쿄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되돌아온 한 선배를 마주쳤다. "전시 할 거니?" 나는 "하고는 싶지만 상황이 이래서 고심을 하고 있어요" 선배는 대뜸, "한국 상황과는 같지 않을거야" 하고 대꾸했다. 즉 한국의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과는 현지사정이 다소 다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냉정함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로, 스스로의 결정을 따르라는 뜻이었다.
긴자에서의 사정도 있고 현지 갤러리 측과의 사전 협의 등이 있어서,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것은 큰 무례다. 일본 사회는 '큐' 한달 전 어떤 약속 등을 일방적으로 훼손 시키는 것은 결례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현지 특파원으로 지냈던 선배의 사무실을 방문했었던 적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인터뷰이를 잡는 일, 사람들의 얼굴을 스케치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이 미팅은, 적어도 세 달 전 안되면 한 달 전에라도 잡아놔야 승락을 해 준다는 것이다. 속보와 사건 등의 시의성 상, 보도에서 몇 달 전의 인터뷰 요청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무례한 인터뷰 요청은 거의 대부분 거절을 당한다고 한다. 또 길거리 스케치와 시민 인터뷰는 '법적인 소송'의 문제도 될 만큼 시민들의 인식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 언급했다. 덧붙이기를 유럽사람들 보다 더 하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여러 사정 등을 잘 아는 단계로, 내달 일본에서의 전시를 미룬다는 것은 큰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의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잇는 것은, 국내의 내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강진과 쓰나미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의 사태는 방사능 등의 위협을 내세우는 새로운 국면의 사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완고했던 내 고집은 그런 것을 걱정하는 지음들의 표정 속에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일본 대지진 후 일주일이 조금 지났다. 당초 일본 관련 속보를, 화면으로 가장 먼저 보도 제작했었던 것이 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것이, 이제는 내 일상의 여느 범주마저 변측시킬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면 이제는 흥미롭기까지 하다. 어제 저녁,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아내의 반대를 위시로 하여, 나는 일본 갤러리 측에 전시 연기를 알리는 메일을 발송했다. 한편, '위안'이 느껴지기도 했다. 복통약을 먹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