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전
[2012: Analogos] A multiplicity of spectral terms
스티붕이
2010. 11. 16. 09:09
Work information
Coorporation working
Media artist : Jungho Suh
Music composer : Miyen Kim
Main title : A multiplicity of spectral terms / Sub title : Double think Red and Blue
Preface conceptualization : A multiplicity of sepctral terms between Red and Blue, there's relations prospering on isolation, sensation of horror for PF(piano)ㆍVN(violin)ㆍVC(violin cello) / composed running time : 12minutes x 2 = 24minites (2 terms 1 reverse, loop)
Artist note
사람은 다면적이다.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속에 속한 내면은, 다양한 인격으로 형성 돼 사람 '존재 아'를 규정해 낸다.
딜레마는 이곳에서 발생한다. 존재 아의 다중한 인격은,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을 때 그것이라고 지칭해 낼 수 있을까? 이 물음. 현시적 시점에 있어 현재로서의 대자가 존재 아 당위라고 답한다면, 지난 과거는 무엇인가? 또 찰나의 지점, 이제 막 스치는 존재자로서의 자신은 어떤 것이라 지칭해 둬야 하는 것일까? 지점의 규정은 불확정적이면서 변칙적이다. 숫자로 정량ㆍ정상화 될 수 없다. 난제다.
이런 예가 있다. 헤어진 연인이 있다. 과거, 그 연인을 사랑했다. 떠난 지금, 연인을 사랑하지 않고 증오한다. 넓게 보자. 과거ㆍ현재는 현시적 시점으로 대립한다. 양항은, 부지불식 다른 인격을 형성해 내고 있다. 이중 존재 참은 양항 중 어떤 부위가 되는가? 찰나로서의 현시적 시점인가? 아니다.
헤어진 현재 상태의 자신이 본연적 참이라고 규정해 보자. 문제가 발생한다. 근 미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났다. 사랑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절대는 그 순간 보기 좋게 무너진다. 시간 비가역성을 들보로 쥔 사람들에게, 절대 지칭의 모든 것은 미래의 불확정 연유들로 인해 대부분 흩뜨려지고 만다. 존재 참의 아는, 시간ㆍ공간 등을 통해 지칭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허위는, 사람과 계 그리고 성질 등을 통해 다양하게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존재 아의 진정은, 시공으로 규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성은 소멸한다. 다면적 사람에게 있어, 현재적으로 규정하려는 모든 것은 허위다. 남아 있는 것은 유리잔 위 달그락 거리는 얼음소리와 앞을 향해 걷고 있는 사람의 심정, 혼란스런 사유만 전면에 부각 돼 있게 되는 것이다.
파란 빨간색이 있다. 두 가지 심정, 즉 사랑했던 과거와 증오하는 현재를 양항에 대립되는 색상으로 분배시킨다. 시간은 공히 열두 가지 섹션을 통해 배분해 둔다. 사계절, 기승전결의 구획이 녹아들어 있다. 그 위로, 온음 없는 반음 그리고 불협의 음이 돌출 돼 온다. 시점 A에서 시점 A'에 이르기까지, 관찰자 B는 대상에 '무엇'을 사유하게 된다. 지각해 왔던 절대의 붕괴다.
낮밤 교차되는 일몰 어느 때, 경계의 지점, 눈 앞 그것은 시간을 따르고 있는가 공간을 따르고 있는가? 혹 보는 이 심정과 각기 다른 감정을 따르고 있는 것인가. 낮도 밤도 거짓이다. 또 경계 무위도 거짓말이다. 언젠가는 표상으로 형상화 돼, 명백한 낮과 밤의 구분을 발현해 내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 물리적 시간은 흐른다. 현재적 시점 관찰자가 보고 있는 것은,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니다. 사랑했던 자신도, 동시에 증오했던 자신도 아니다. 더불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규정할 수도 없다. 기괴(insolite, Deleuze's)가 왔다. 시지각(visualization and perception)의 절대(absolute evaluation)는 차연(diffrence), 파쇄한다. 그리고 정립(present)ㆍ자각(embodiment)된다. 현실로 되돌아간 관찰자는, 파토스(pathos)의 실현(relized)을 시도할 수도 있다. 현재를 항해하는 본연적 존재 아는, 끊임없이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 피곤을 무릎 쓴다. 규명해 내기 위해 오감을 동원해 내는 것이다. 표상 규명에 익숙하던 현대인에게 있어, 시지각 등을 통한 사실 확인은 익숙한 방식이다, 그것의 허망함(confesstions of visualization and perception)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색상은 변한다. 허상의 시간(illustion time)에 이르면, 시간은 그 스스를 탐치 말라며 타자를 절멸해 낸다. 그리고 그 자신, 눈 감고 숨을 죽인다. 시공이 침잠한 어느 순간, 관찰자는 모호한 사위의 고립(isolation)을 경험한다. 그것은 끝없이 움직이고 있는 발 달린 스펙트럼의 껍데기며 절대를 깨고 선, 다양ㆍ다층의 포효다. 각 세우던 반대는 없다. 빨간ㆍ파란색도 없다. 중간 색도 없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아니며 규정지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있다. 사위는 존재해 있고, 시공은 흐르고 있다. 신체적, 우주적 시계가 앞을 향해 걷고 있는 한, 규정지을 수 없는 절대의 구성은 다소 비스듬한 형태로 껍질을 벗으며 전위를 항해하고 있다. 열두 가지 파쇄는 셀 수 없는 수억 개 단위로 쪼개져, 분열된 음부의 사람을 관찰자 앞에 무색하게 드러내 놓고 눈을 감는다. 절대는 죽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