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Fugitive essays
하얀 까마귀
스티붕이
2010. 9. 8. 00:35
마음이 허하다.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 알 수 없다. 자신감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쿄타워는 올곧다. 오늘 따라, 하늘은 맑다. 구름은 적당히. 습한 날씨는 여전하지만, 무더운 태양은 기운을 숙였다.
멀리 초등학교에는, 새까만 하의에 흰색 상의를 입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렬로 줄을 서거나, 자유롭게 움직인다거나 한다. 아이들은 행복한가, 하고 생각하려는 순간, 52층 고층을 가르는 새까만 덩어리가 눈앞을 통과했다. 까마귀다. 그것이 눈앞 배경을 가르고 있는 것이다. 내 심경의 발로다. 허한 생각, 짧은 단편의 사고가 드문드문 복잡한 사색 파편을 만들고 있었다. 옛 시인은 이것을 자안, 즉 글의 눈이라 불렀다. 수개월 참고 견디다, 어느 날 바위를 가르던 새하얀 백로.
더위를 뚫으며, 자전거를 굴렸다. 아케보노바시에서 아카사카, 이어 롯본기까지, 힘들게 도착했던 미술관은 조금 다른 지형으로 이방인을 맞이해 준다. 반기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방문, 나는 피로를 느끼고 있다. 알 수 없는 심경에 온 몸은 맥을 푼다. 담당자와의 통화 내용이 귓전을 맴돌았다. 직감, 그쪽도 여유가 없다. 작품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간접적 전달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방법이 잘 못 됐거나, 부족한 것이다.
달렸다. 힘들었지만, 신념 있는 주행이었다. 그것만큼은 비난할 수 없다. 천리를 넘어 이곳으로 날아왔다. 해낸 것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단지 팽배했을 뿐이다. 그것은 사방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시간 없고 금전 여유도 크지 않기에, 할 수 있다는 신념만 동력으로 삼았다. 신념이 일순간 쇠하자, 운명적 이끌림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잘못 한 것 없더라도 어쩐지 외로움, 암울한 사고가 엄습을 한다. 그것을 물리칠 방법은 당분간 없다. 외롭고, 그렇지만 위풍스럽게 서 있는 도쿄타워를 향해, 내 존재의 존엄을 단기적으로 낮추고 만다. 인간이다. 희비에 반응하는 감정, 설익은 과실.
타워가 이쪽을 노려보면, 태양은 고개를 숙인다. 저쪽을 노려다 보면, 고개를 내민다. 감정 없는 올곧음은 도쿄를 닮았다. 단정하고, 또 아름찬 모습이다. 경이롭다. 때로 여유를 준다. 그러나 인간적이지 않은 사면. 홀로 있는 이곳은 차가운 대리석 의자, 외는 없다.
석양이 지고 있다. 건물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아이들은 그림자 속에 파묻혔다. 내 자리의 정 방향, 길게 뻗은 그림자가 주택을 감는다. 학교와 빌딩을 덮는다. 위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은, 발의 확장이다. 까맣다는 것은 쓸쓸하다. 대화할 대상이 없다는 것, 나는 사색과 함께 고아가 된다. 무엇을 위해 달려왔던 것인가?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은, 의문의 그림자로 늘어나 있다.
둥글게 펼쳤던 아이들이, 이제는 동그랗게 모여 합죽을 한다. 그러다 오와 열에 맞춰 일사 분란한 대형을 형성한다. 아이의 노력, 어른의 노력. 실행한다는 것은 때로 현실의 엄중한 벽에 부딪히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회피할 수 없다. 벽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른과 아이의 다음 성장을 위해,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신념은 일반적으로 행동을 만들고,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신념 또는 명분이란, 피안의 이미지라는 형태로 사람 주위에 공전해 있다.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피안은, 다소 기이한 형태로 필부필부 삶 도처에 현존해 있는 것이다. 현실의 벽은, 그것을 통해서 넘을 수 있다.
되돌아가는 길은 가깝다. 게이오 대학을 거쳐, 그 길로 신주쿠 구까지 직진코스다. 땀보다 무거운 습기를 이겨낸다면, 저녁 주행은 그럭저럭 해 볼만하다. 일정은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 바퀴를 돌리는 것이 당면한 과업이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 해야만 한다는 명분, 그리고 진솔한 신념이 있다면, 원리는 주변에 동행할 것이다.
평지로 이뤄진 도쿄 시내는 단정하다. 나는 그곳 어디에 앉아 있다. 달려가면서도, 때로 걷는. 그러다 앉아 눕기도 하는 삶은, 여유를 푼다. 성공지향은 거짓이다. 승리는 단편 소설에만 등장하는 내러티브다. 삶은 굽어있고, 물줄기는 파편으로 흐른다. 세상은 채찍을 준비했다. 삶은 당근을 준비했다. 사람은 울다 비상했고, 또 웃다 넘어졌다. 앉았다면 눕고, 눕다가는 일어선다. 채비는 다음을 위한 도약의 준비. 그러하건데 삶은 바퀴다. 그림자 늘어지면 또 다시 사라질 환원의 법칙인 것이다.
까마귀 난다. 타워는 갈라졌다. 마음은 허하지만 지금은 아까. 그리고 하얀 까마귀.
2010년 9월 7일. 롯본기 힐즈 52층, 도쿄타워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