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Sound of city

광야의 소년

스티붕이 2012. 7. 20. 17:06

Sound 0049/ 1984


이별은 아파요. 무거운 시계가 가슴 깊이 박혀있어요. 시침이 분침을 때리면 그 예봉이 가슴을 찔러요. 선혈 없는 고통이죠. 멀쩡한 육신의 벽돌이 나를 감싸 난 정상적인 미치광이가 되고 말아요. 벽돌은 견고한 감옥입니다. 소년은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난 말없이 전방만 바라보고 걸었다. 무색한 반응에 소년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듯 했다. 그럴 때면 난 앞을 보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연의 아픔을 알아요? 실연. 여전히 내게도 무거운 소재다. 아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그처럼 무거운 소재를 들이밀곤 했다. 난 모르쇠로 묵살한다. 미소 짓기도 한다. 어른들의 넉넉한 표정에 아이들은 동경을 가질 것이다. 하반 엉덩이로 소년의 심장이 느껴지지만 그것에 관심 두려 돌아보진 않는다. 아이의 조악한 순수함이 두렵다. 천추가 난만이라 교만한 소년의 치기가 무섭다. 경험하지 못한 소년의 나불댐도 그저 꼴 보기 싫다.


세계에 대한 소년의 교만은 아이를 하대하는 응수로 대신 갚는다. 소년에 그저 무관심한 척 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단어를 내뱉든 난 진보된 성인으로 포만한 웃음을 짓는다. 그것이 어른의 자세다. 넌?  짧은 단어를 던졌다. 소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영혼이 찢어지는 아픔이죠. 한 영혼이 분리되어, 반쪽 영혼으로 감금되는 것입니다. 둘로 찢어지는 고통이 바로 실연의 아픔이죠.


사랑이라곤 열정적인 애증이라곤 전무할 아이가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단어를 쏟아내는가? 난 걸음을 늦췄다. 조몬 삼나무는 아직 이구나. 아저씨가 찾는 나무는 파라다이스인가요? 난 대답하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지나온 광야를 살펴보다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사방은 죽음이 드리워진 사토뿐 난 이렇게 생명 없는 광야를 걸어왔나 싶어 찹찹한 사색에 빠졌다. 아이는 땅과 하늘에 끼어 내 시야에 갇혀 있었다. 소년의 동공은 흰색 우주에 빠져있었다. 검정 유성이 그곳에서 폭발했다.


넌 소년이 아니구나. 실연을 아는 사람 이예요. 어떻게 알지? 체험했으니까요. 실연을 당하기라도 했다는 거니? 여러 번. 살가운 태도에 비해 소년이 말하는 내용은 건조 만연했다. 소년은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그렇게 구부리고 있으면 나무 찾기가 더 쉬운가요? 하고 물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도 거꾸로 바라보면 달라 보이기 십상이지. 아저씬 달라질 의지가 없는 사람 이예요. 자세를 곧추세우면 편견에 사로잡힌 당신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죠. 난 뜨악한 표정을 만들며, 넌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물었다. 소년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지나던 광야의 파란 전갈 두 마리를 붙잡아 올렸다. 밟아요. 자그마한 소년의 구두가 전갈 몸통을 짓밟았다. 독소 솟은 꼬리가 내 쪽을 향해 난 자세를 고쳐 회피했다.실연의 시계는 전지가 달 때 몸속에서 사라져요. 그 때는 육신에 갇힌 절반의 영혼이 만기출소 할 때죠. 아저씨는 그것을 기다리기 보다는,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을 기다렸어요. 사랑으로 봉기한 새로운 연인이 벽면을 허물면 당신 결박을 풀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니 하지만 눈 먼 자들은 몰라요. 새로운 연인의 자유가 또 다른 결박의 이유임을. 삽시간에 벌어진 광경과 소년의 말에 정황 없어 난 광야에 주저 않았다. 소년은 전갈 파편 위로 솟아 있었다. 망연자실 그를 바라보던 난 당혹한 기색이 얼굴 위로 번져가고 있었다. 소년은 내 자신의 과거였다.당신과 난 그녀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조몬 삼나무 아래는 깊은 수렁이 있다. 수렁은 영원한 자유다. 구차한 영혼의 달램도 필요 없고 연민으로 인한 상흔을 상기할 필요도 없다. 무의 세계로 빠져들어 세계와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 달콤한 유혹은 침잠한 자들을 유혹했다. 난 그것이 궁극의 파라다이스라 선언했다. 눈 먼 자들은 그곳을 알지 못했다. 결박된 인생에 변변한 행복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 그들과의 관계를 지속하기보단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자유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녀왔던 것은 그녀가 뜯어 해친 사랑에 대한 상실의 증오였다. 반응 없는 세계에 대한 교만이었다. 육체관계가 빗어낸 성적 욕망의 덩어리들. 더러운 세상 이곳저곳에 난 태반 최초로 회귀하고 싶었다. 아스라한 과거가 소년을 만들었다. 살아갈 이유가 전무했을 유년이 외려 살아갈 당위로 오늘에 권고하는 것은 모순이다. 도래할 수렁에 행복이 없을 것이라면 지나간 과거가 행복인가 싶었다. 혼란스러웠다. 


여기 약이 있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리고는 오른쪽 호주머니를 뒤척여 오색 누비로 감싼 알약을 들이밀었다. 혼란스런 사색에 잠겨있던 난 정갈하지 않은 자세로 알약을 들이켰다. 소년 머리가 구추 햇살에 반짝였다. 그 아래 입가 주변으로 조그만 조롱이 피어나듯 보였다. 난 광야를 둘러보았다. 복잡한 시선이었다. 한동안 침묵했던 내게, 소년이 말을 이었다.


그 알약은 실연의 증오를 씻어주는 효능이 있답니다. 구류된 영혼의 색상도 천양지차죠. 아저씨는 자학의 색상에 영혼을 팔았었답니다. 그런 자들은, 조몬 삼나무 아래의 수렁을 찾아가기 마련이죠. 그 수렁은 절규하는 영혼의 구덩이예요. 아저씨의 증오는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습니다. 난 소년을 올려보며, 이제 어떻게 되지? 하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멀리 조몬 삼나무가 보인다면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갈 요량이었다. 그 약은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죠. 그리고 소년이 사라졌다. 광야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