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Sound of city

단말마의 고통

스티붕이 2012. 7. 20. 13:07

Sound 0027/ 1984


죽였다. 나를 죽였다. 세계는 무지개처럼 화려해지다 어두워졌다. 흑암이 천지를 덮었다. 나는 사라졌다. 존재하지 않는 나로서, 세계는 존재해 있을까? 나 아닌 다른 것으로 존재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즉자 없는 반쪽 세계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혼란스럽다. 명명의 궁리를 사후에도 하다니, 나는 죽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색으로 빠져들면, 나는 어느새 부활해 있었다. 사과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재차 나를 살해해, 나는 죽음 아닌 죽음으로 되돌렸다. 무한히 반복되는 생사의 대립, 끝없는 다툼.


너는 카인의 자손이다. 나는 눈을 번뜩였다. 꿈이었다. 악몽이었다. 반복되는 자살. 그리고 부활. 나는 상체를 일으켜 거친 숨을 내몰았다. 전신은 옹송그린 땀방울로 흥건했다. 여명은 여직이다. 사방은 어둡고 보이는 것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눈을 닫고, 사라진 것을 일깨웠다. 꿈의 마지막 장면, 실체로 부활한 존재의 유기물들. 나는 축축한 이불을 벗어나 바닥에 엎드렸다. 차가운 한기가 뱃살 위로 전이됐다. 외로웠다.


흑암에 갇힌 자신이 어쩐지 처량해, 나는 몸을 세워 불을 켰다. 새파란 형광등 속에는, 파리며 모기 따위의 미물이 너 댓 마리 죽어있었다. 불빛으로 투영돼, 그것들은 새까맣다. 나는 형광등 아래 꼿꼿이 서서는, 천진한 그들의 몸통을 관찰했다. 가볍다. 생명 없는 껍질의 본질은, 황망한 본래만큼 죽음처럼 가볍다. 만지면, 바삭하고 연기가 될 것 같았다.


네 자살은 꿈속 죽음이야. 하루에도 수백 번 죽을 수가 있겠지. 그래서 그런지 넌 불안 해 하고 있진 않군. 하지만 어떤 면에서 네 죽음은, 현실보다 죽음다울 수 있어. 그래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 왜? 네가 사는 세계는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야. 형광등이 말했다. 갑작스러웠다. 당황됐다. 그는 내 기색을 눈치라도 챈 듯, 게걸스럽게 웃으며 불빛 속 미물들을 뱉어냈다.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나는 손을 올려 머리를 털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광등은 마뜩한 내 반응이 못 마땅했는지, '선택해. 육체와 영혼. 넌 어느 쪽이니?' 하고 언짢은 듯 물었다. 나는 침묵했다.


고민할 필요 없어. 네가 이끌리는 것을 얘기하면 돼. 마치 집 앞 슈퍼에서 과자를 고르듯 말이야.'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혼' 하고 짧게 외쳤다. 단호했다. 


그러자 정적이 흘렀다. 불빛이 꺼졌다. 이윽고 번쩍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육체는 전광석화처럼 뜨거워지다 찢어졌다. 새빨간 피가 뿜어졌다. 창자가 쏟아졌다. 이빨이 빠지고 눈알이 터졌다.


아름다웠다. 유기질의 마지막 향연, 그 발악. 소란, 연주, 권위의 포기. 새까만 동공이 바닥으로 부딪히자, 육신에 결박됐던 영혼은 위기라도 감지한 냥, 쏜살같이 인두겁을 찢었다. 그리고는 탈주했다. 비상했다. 죽음이란 이런 걸까? 아픔도, 어떤 슬픔도 없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 평화롭고도 일상적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