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의 기침소리
Sound 0011/ 1984
오늘도 그 자리에 앉았다. 상행 7-1. 건너 좌석, 한 광인이 앉아있다. 행색이 광인이고 자조(自嘲)가 광인이다. 여느 한 자처럼 그도 안하무인은 일반이다. 고성 지르고 공중에 공포를 내뿜는다. 이런 자는 국철에는 단골이라 승객은 그저 무덤하다. 딴청 하여 광인이 자신에게 피해주지 않기를 바라는 것에 만족한다. 무대 위 광인은 말하자면 빈 객석을 바라보고 있는 암울한 연기자다. 그가 안하무인 하니 관객은 철면피로 시위하는 셈이다. 나는 읽던 책_방법서설_을 덮고 눈을 감았다. 면면한 건물 건물이 반복되고 조용한 소음이 귀청을 채우면 국철의 오후 낮잠은 그저 꿀맛으로 대낮승객을 유혹한다.
그러다 얼마 후, 앞에 앉은 광인의 우렁찬 헛기침이 객차를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감았던 눈을 힘차게 벌렸다. 깜깜한 전면 상황에, 광기가 내 면상을 후려칠 것 같은 공포로 본능적 사주의 경계가 옳다 단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 인식의 망루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책을 펴고 읽는 냥, 광인의 행동을 주시했다. 이런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외면에 행패할 미래의 광인인가, 현재의 기침하는 병약한 광인인가. 그러다 나는 현대인 내면에 숨은 또 하나의 교양된 광인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 편견이라는 광인은 내부를 자리 잡고 사주를 경계하는 자다. 여북하여 외부의 미친 자가 자신을 해할까 우리는 완벽한 결벽증 환자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한 번의 기침으로 그를 해하였고 만약 그가 내 주변으로 다가오기라도 한다면 서슴없이 내면의 광인을 불러들이고 말았을 것 같았다. 면피를 찢으면 그도 이미 외부의 광인으로 돌변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것에 흥미로웠다.
송내역에서 한 여성이 승차하여 광인 옆에 앉는다. 두어 정거장을 가다 광인이 그녀 귀청으로 알 수 없는 낱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여성은 딴청으로 외면하다 얼마 후 난색 하여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객차승객은 평이했던 흐름 속일이라 광인을 지탄하거나 교정하려는 마음은 먹지 않았다. 어떻게 보아 실수였고 어떻게 보아 치기어린 광기라 참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 세계에 그가 자신 바운더리로 초대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광인과 정상인의 격은 그들 스스로 색깔 다른 상경의 철로를 평행하게 질주 한다 생각했을 참이니 그를 지탄하여 관계의 링크 안에 참석시키는 것은 누구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정상과 절명하는 그의 목숨은 스스로 자처했던 기묘한 행동이 원인 인 듯 했으나, 외로운 무대와 초대장 없던 그의 우편함이 정상과 절명했던 원인이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내면으로 숨는 것이다. 세계가 그를 옥죄기 시작하여 숨었던 내면의 광기가 전면으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광인의 악순환은 계속하여 반복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상과 광기의 거리는 한 면 차이다. 광인은 정상인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바쿠스의 신을 불러들여 몇 술 거나하게 취해버리면 내부 광인은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거리는 혀와 입술의 거리보다 짧다. 그러다 안티-바쿠스를 불러들여, 뜨거운 이탈리안 로스트나 엑스트라 볼드 등의 커피를 들이낀다. 지배되었던 이성은 바쿠스를 물리치고 본능을 억제하기 시작한다. 이 둘의 상관관계는 정상인과 광인의 거리보다 자유롭다. 한 명의 인간에 정상과 광기가 동시에 기거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외부의 광인을 태생의 그릇됨이나 격 다른 위치로 격하시켜버린다. 단지 그가 바쿠스와 안티-바쿠스의 면면으로 비껴있을 뿐이라도, 사람은 편견을 통하여 외부를 구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객차에 들러붙은 초라한 광인 한 명을 바라보며, 바쿠스에 취해버린 정상인의 백주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옆에 앉은 초로의 신사가 그의 동료였다. 자정이면 찾아올 바쿠스의 신이, 나와 승객을 광인으로 만들어 교양의 가면을 벗겨주고 있었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격 다른 평행의 수평선. 그러나 인간의 동등한 가치를 상상하니, 이 둘은 구(sphere)의 여느 지점에서 조우하고 말았던 것이다. 평행한 두 선은 만날 수 없다는 고전물리학은 붕괴됐다. 그리고 이들은 만날 수밖에 없다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식과 편견은 사회에 파다하게 남고 남아, 국철의 광인과 부평의 외국 노동자, 서울역의 노숙인 등을 자신과 별개로 하여 우리의 계급을 여전히 구별하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상상하고 있을 때, 광인의 기침소리와 헛소리가 객차에 울려 퍼졌다. 광인의 고성은 유별났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내 상상은 깨졌고 몸을 움츠려 그를 증오했다. 그리고 그가 내 주변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고대했다. 전철 선로는 여전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덜컥’거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백주 햇살은 옅어지고 있었다.